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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monastery 2025. 9. 16. 01:10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우리의 삶은 평생 동안 여러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많은 걱정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스트레스는 여러 신체적 정신적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본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돌보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적어도 가볍고 실없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우리 사람들은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본능에 따라 살아가고 자라나는 식물이나 동물이 아닙니다. 그러면 주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마태오 6,26),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마태오 6,28)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리스도께서 “걱정하지 말라”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더러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바는, 우리가 필요한 일들을 모두 다 했으면 그 후에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관련된 것들을 건강한 방법으로 보살피는 것은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필수 요건입니다. 반대로, 불안과 걱정으로 보살피는 것은 정죄의 대상이 됩니다. 그것은 스트레스와 불안과 두려움의 원인이 되고, 우리의 삶을 병들게 하고 닳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부족하며 우리의 믿음이 약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면의 전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 변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대답은 주님께서 주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오 6,33)

 

어떤 사람이 큰 프로젝트, 연구, 임무 등에 몰두하거나 어떤 일을 너무 좋아할 때, 다른 것들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 외의 것들은 모두 관심 밖에 있고, 설사 관심사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후순위를 차지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좌우하는 유일한 변화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지키는 것을 가장 최우선에 둘 때 일어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바로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살아 있는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손 안에서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며, 불안으로 점철된 걱정과 보살핌은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현재와 미래를 돌보면서 살아가고 일할 테지만, 아버지의 품 안에 있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함과 고요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언제나 돌봐주시니” 말입니다. (베드로 전서 5,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