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인가, 저주인가?

축복인가, 저주인가?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많은 이들은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창세기 3,19 참조)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며 노동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류의 첫 조상이 타락하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에덴동산을 일구고 돌보라”(창세기 2,15 참조)는 명령을 주셨던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큰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지루하고 단조로웠을까요?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노동을 통해 불법적이고 부정직하며 더러운 이익을 추구한다면, 즉 누군가가 게르게사 지방 사람들이 했던 돼지 사육과 같은 일(루가 8,26-39)을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당시는 모세 율법에 의해 돼지고기 섭취가 금지되었었기에, 돼지를 기르는 일은 하느님의 계명을 거역하는 죄로 여겨졌습니다). 반면에 모든 정직한 일은 축복을 받으며 결코 멸시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고대 시인 이시오도스는 “부끄러운 노동이란 하나도 없다. 놀고 게으름 피우는 것이 부끄러워할 일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노동(일)과 관련해서 두 가지 점만 강조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노동(일)은 우리가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여러 능력과 재능을 주셨으니, 우리는 이것들을 활용해서 가능한 한 창의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창의성은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노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놀고 쉬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휴일은 사람들을 게으름과 태만으로 이끌기 쉽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는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있으면서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될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른들은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낼 때이고,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인터넷 사용에 그렇게 시간을 보낼 때입니다.
둘째, 우리는 노동(일)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노동을 단지 생계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친절과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기회로도 바라봅시다.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일례로, 우리 주변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봉급의 일부를 자선활동에 써서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하니 우리는 성 대 바실리오스가 말했듯이 “우리 손이 하는 일이 항상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이 되도록” 하느님께 간구하면서 일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