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은 하느님을 멀리 할까요?

우리는 하느님이 사람을 사랑하고 다정한 아버지처럼 돌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러한 사랑에 부합하지 못하고 하느님 곁에서 멀어져 갈까요?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느님, 이 몸은 애타게 당신을 찾습니다."(시편 42,1)라는 시편의 말씀처럼 사람이 하느님을 찾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지상의 모든 백성들은 신을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많은 종교적 유적들은 그 당시 사람들이 신이라고 믿었던 존재를 숭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방해 요소가 생기고, 그것이 사람의 자유에 영향을 준다면, 사람이 하느님께 다가가는 길에 혼란이 생기고, 그래서 점차 하느님과 멀어지고 하느님을 잊게 됩니다. 그것은 자력을 잃어버려 방향을 제대로 지시하지 못하는 나침반을 들고 길을 떠난 탐험대와 같습니다.
사람이 하느님과 멀어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기주의입니다. 이것은 천사인 에오스포로스까지도 사탄으로 만들었고, 그를 따르던 천사들까지 하느님과 멀어지게 했습니다. 이기주의는 아담과 하와도 하느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이기주의는 오늘날도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믿게 합니다. 그래서 이기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은 인간의 지식과 판단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이 세상의 모든 악은 다 독선적이고 냉정한 신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느님을 비난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판단만 옳다고 믿을 뿐, 더 이상 하느님을 믿지 않으며, 그저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기주의자는 하느님의 모습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창조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하느님을 무시하고 원망합니다.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얕은 지식에 근거해 하느님을 멀리하고, 스스로 잘못된 길을 선택합니다. 이기주의자는 "하느님, 우리 앞에서 비키시오. 당신의 가르침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소."(욥기 21,14)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물질적인 유혹입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시간과 힘을 소모하기 때문에, 기도하고 성서를 읽는 시간, 하느님을 생각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맙니다. 그렇게 해서 재물을 쌓게 되면, 이제 그 재물에 의지해 자신감과 힘을 느끼게 되고, 더 이상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마태오 19,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십자가를 지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회에서 더욱더 자기 자리를 발견할 수 없게 됩니다.
세 번째 이유는 육체의 욕망입니다. 인간이 육체의 욕망에 휩싸이게 되면 추잡한 정욕의 만족을 위해 가족, 품위, 비용, 건강 등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나락에 빠지게 되면 하느님을 방해물로 생각해 피하게 됩니다. 양심은 계속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님을 고발하지만,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양심마저 무뎌지고 어두워져 하느님이 없는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하느님? 신? 하느님을 본 사람이 있나? 많은 사람들이 '신은 없다.'라고 했으니, 확실히 없어."라고 결론을 내리고, 아무런 제동장치도 없이 욕망의 충족만을 위해 내달리는 삶을 합리화합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락된다'고 통찰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바로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 가지를 늘 경계하고, 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