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성 아가삐, 이리니, 효니아 세 자매 순교자들

성 아가삐, 이리니, 효니아 세 자매 순교자들(4월 16일)
성 아나스타시아 대순교자와 세 자매
세 자매 성인은 데살로니끼의 부유하고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디오클레티안 황제 시절, 가정에서 성서사본을 소유하는 것을 금하는 칙령이 발표되자(304년경) 세 자매는 도시를 떠나 호수 가까이 있는 높은 산 위로 올라갔으며, 그곳에서 질로스라는 이름의 경건한 수도자와 함께 기도생활을 해나갔다.
성 아나스타시아(12월 22일)의 영적인 아버지인 크리소고노스 성인이 박해자의 칼에 의해 순교를 당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질로스에게 크리소고노스 성인의 몸이 있는 곳을 계시해 주셨고, 이에 따라 질로스는 성인을 합당하게 장례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질로스의 꿈에 크리소고노스 성인이 나타나, 아흐레(9일) 뒤 세 자매가 붙잡혀 아나스타시아 성인과 함께 자신들의 생명을 그리스도께 바치게 될 것임을 알려주었다.
아나스타시아 성인은 머뭇거리지 않고 세 자매가 숨어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따뜻하게 세 자매를 껴안았으며,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끝날 때까지 참고 견디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자신이 마지막까지 함께 할 것임을 약속하였다.
총독 앞에선 세 자매
운명의 날이 되었을 때, 황제의 군사들은 세 자매가 있는 곳을 찾아내서는 난폭하게 세 자매를 붙들어 마케도니아 지방의 총독인 둘케티오스 앞으로 끌고 갔고,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세 명의 젊은 여자 그리스도인들인 카시아, 필립빠, 에프티히아와 아가톤이라는 젊은이가 끌려와 있었다. 황제와 시이저(caesar)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으라는 총독의 요구를 세 자매와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물리쳤다. 그러자 총독은 굳건한 신앙을 보인 에프티히아를 임신한 지 일곱 달째인 관계로 그냥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아가삐와 효니아는 화형(火刑)에 처하고,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은 나이가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에 감옥에 가둬두라고 말했다.
신랑 그리스도를 위한 세 자매의 순교
아가삐와 효니아가 처형된 날, 간수들은 집에서 성서가 발견되었다는 구실을 붙여 다시금 이리니를 총독의 재판정 앞으로 끌고 갔다. 총독은 성인을 달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그리스도를 부인할 것과 우상 앞에 제물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을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심문(審問)하고 위협을 해도 성인이 흔들림 없는 용기와 굳센 신앙을 보여주자 총독은 성인의 옷을 모두 벗겨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는 보호를 받았고, 그 누구도 감히 성인에게 다가가거나 욕설조차 내뱉지 못했다. 다시금 총독 앞으로 끌려온 성인에게 ‘이 바보 같은 짓을 계속할 것이냐?’하고 묻는 둘케티오스 총독이 다그치자 성인은 ‘바보짓이 아니라 참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총독은 다음과 같이 선고하였다.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제물도 바치지 않은 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주장한 이리니를 그의 자매들처럼 화형에 처하도록 하라.’
다음날 군인들은 성인을 다른 자매들이 순교한 높은 장소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 다음 뛰어내리라고 명령하였다. 성인은 시편을 낭송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다음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몸을 던져 향기로운 제물로 자신을 봉헌하였다.*
* 304년 4월 1일. 그 뒤 성인들이 순교하였거나 매장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데살로니끼의 성벽 가까운 곳에 세 자매 성인에게 바쳐진 성당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