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니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니라.” (마태오 5,7)
소티리오스 대주교
구복단이라는 황금줄(chain)에 주님께서는 자비(역자: ελεημοσύνη)의 미덕을 더하십니다. 우리가 사회에서도 볼 수 있고,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도 볼 수 있듯, 인간은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사기, 거짓말, 불의, 위조, 위증, 살인 및 자기 영혼을 지옥에 빠뜨리는 다른 모든 더러운 방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자신의 목표를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 모든 악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기쁨과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 삶에 해독제로서 자비를 소개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고통받는 형제들의 필수적 생존 요건에 무관심하지 않으며, 자비를 베풀기를 요청받을 때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베풀기를 거절하지 않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복되다는 것을 계명으로 정하셨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형제로 느끼고 그에 상응하는 자비로 형제들의 필요를 빨리 해결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은 축복을 받습니다.
자비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비란, 우리는 가지고 있지만, 우리 이웃에게는 없으며 꼭 필요한 모든 좋은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주는 것입니다. 자비는 무익한 감정이나 값싼 동정의 말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1 요한 3,18) 또한 여기에서 주님이 축복하시는 자비는, 동냥하는 사람의 손바닥에 돈을 적게든 많게든 줌으로써 그가 더 이상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는 인간이 겪는 불행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물질적, 영적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제 생각에 주님께서는 구복단의 이 부분에서 돈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만 가리키시는 것이 아니라, 각종 유용한 것들로 또는 다양한 형태의 봉사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을 의미하시는 것 같습니다. 자비를 베풀라는 주님의 이 계명은 아주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비는 또한 우리가 가진 재능이나 능력을 나누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형제들이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우리의 재능이나 능력, 기술적 지식이나, 기타 다른 지식들을 나누어주는 것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일자리가 필요한 형제에게 우리가 가진 좋은 생각, 조언, 유용한 정보를 전해준다면 그 형제의 가족은 빈곤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 때 꼭 금전적인 돈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베드로 사도에게 돈을 구걸한 일을 기억해 봅시다. 베드로 사도는 그 앉은뱅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가시오.” 이렇게 말하며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사도행전 3,6-7 참조)
자비를 실천하는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돌보는 것입니다. 이웃에 사는 외롭고 병든 어르신에게 음식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이 자비라면, 그분이 고백성사와 성체성혈 성사로 다음 생을 준비하며, 그의 불멸하는 영혼이 구원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얼마나 큰 자비가 되겠습니까. 또, 미혹에 빠진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가 죄악 된 정욕에서 벗어나 마침내 구원을 찾도록 돕는 것도 큰 자비이자 자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 사도를 통해 이를 확언하십니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한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용서받게 해 줄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두십시오.”(야고보 5,20)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은 자비의 위대한 가치를 강조하는 중요한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실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오 25,40) 그러므로 자비는 고통받는 형제의 고통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 자비가 그리스도께로 직접 전해지는 일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자비를 요청하는 모든 사람을 돕기 위해 얼마나 기꺼운 마음으로 서두르겠습니까! 우리는 가난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풂으로써, 그리스도께 감사를 표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것들을, 심지어 당신의 생명까지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하니 주님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우리가 주님께 보답을 드리는 것은 그리 큰일도 아닙니다. 어차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로 보답을 드리는 것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희생시키셨는데, 우리는 그분이 굶주리시도록 두어야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베푸는 것은 우리 자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하는 것이고, 그로 인한 혜택과 유익은 우리에게 돌아오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자비를 베푼 것에 대한 보상은 그 가치에 합당하게 돌아옵니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니라.”라고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비(역자: 긍휼이라고도 번역되는 단어 έλεος)와 은총을 얻는 사람은 이생에서 참으로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 날에 그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축복 가득한 초대를 듣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오 25,34) 이것이 바로 자비를 베푼 사람들이 받게 될 최종적인 보상입니다. 우리도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어, 우리에게도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기원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