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니라-2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니라.” (마태오 5,8) -2
소티리오스 대주교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을 얼마나 반대하셨는지를 거룩한 복음경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속으로는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했기에, 주님께서는 이들의 위선에 대해 반대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런 정신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고 그들의 양심을 병들게 하였기 때문에 주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는 겉으로는 옳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마태오 23,28 참조)
주님께서는 이 해로운 정신 상태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자, 지난 주일에 살펴본 구복단을 통해 다음을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마음이 죄로부터 깨끗하지 않으면 겉으로 하는 모든 행동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순결하게 유지하려면 각자가 주의를 기울이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니라.”라고 가장 큰 보상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느님을 뵐 수 있게 됩니다. 정말이지, 순결하고 거룩한 이들이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보좌 앞에 서서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을 뵙는 것보다 어떤 더 큰 보상을 소망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맛보고 그 거룩함의 참여자가 되었으니, 이제 하느님께서 주시는 끝없고 영원한 축복들도 받게 됩니다. 성령의 깨우침을 받은 복음사가 요한은 이 모든 것을 확증하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살아가십시오”(1 요한 2,2-3,28 참조). “그리스도께서 (재림 때)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 대하여 이런 희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순결하게 합니다.”(1 요한 3,2-3)
여기서 큰 의문 또는 문제 하나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백만의 정교회 신자 중에서 단 몇 천 명만이 수도사나 수녀가 되고 싶다는 소명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수도원 공동체에 들어가서 수도원장이나 수녀원장의 영적 인도를 받아 정욕으로부터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자신들의 성화를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이들이 거룩함의 절정에 이르러서, 다양한 필요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고 지원해주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할지도 모릅니다. ‘수도사들의 이런 삶은 이해될 만합니다. 그들은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과 근심거리가 없고, 사회의 여러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리스도와 계속해서 함께 살아가며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이상적인 조건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복단에서 축복하는 사람들이 되어 하느님을 뵐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로 가득 찬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정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단 말입니까?’
깨끗한 마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사회가 많은 걸림돌을 끼얹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거룩한 노력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편에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대하시고 다른 모든 것은 당신의 은총으로 돌보아주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우리에게 이를 확신시켜줍니다.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필립비 4,7) 어떤 건물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은 자신이 맡은 위치를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은총은 끊임없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그분은 우리를 홀로 무력하게 두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실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죄로 가득 차 있더라도, 사도 바울로가 우리에게 보증하는 것을 잊지 맙시다. “법이 생겨서 범죄는 늘어났지만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로마 5,20) 그 규모에서도 더 크고, 거룩하게 하는 능력에서도 더 크신 하느님의 은총이 죄를 이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며, 시편 기자와 함께 즐겁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로서 나의 몸을 보존해 주시고 내게 양식을 제공해 주시니 아쉬울 것 없어라....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시편 23,1, 4 참조)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어디에 살든, 우리 마음의 순결과 깨끗함을 위해 노력하고 투쟁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께 헌신한 신자들이 가진 깨끗한 마음과 같은 그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라는 의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랑의 제자 요한 복음사가의 위로의 말을 들어봅시다. “나의 자녀 여러분, 죄를 짓지 마십시오. 그러나 혹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친히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1 요한 2,1-2 참조)
결국, 우리가 열망하는 것은 어떤 성인들이 가졌던 마음의 깨끗함과 순수성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6세기에 살았던 거룩한 사바스 성인이나, 우리 시대에 살았던 뽀르피리오스 성인, 파이시오스 성인, 그 외 이 지상에 살 때부터 성인으로 인정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기적을 일으키는 여러 성인들은 마음이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과 같은 경지에 다다르는 것을 감히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요한 14,2) 또한 다음과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의 영광이 다르며 또 별과 별 사이에도 그 영광이 다릅니다.”(1 고린토 15,41)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 비유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별의 밝기가 다른 것처럼 성인들의 거룩함의 밝기도 다 다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정의로우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문제들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마음의 깨끗함과 정결함을 위해 조심히 살피면서 계속 노력해 나갑시다. 그러면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하는 일을 완성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축복을 받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