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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니라.”

monastery 2023. 11. 6. 01:10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니라.”(마태오 5,9)

소티리오스 대주교


주님께서는 구복단에서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칭찬하신 후, 이제, 사람들 간의 다른 점이나 불화를 평화롭게 해결하여 화합과 사랑을 회복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성탄절 밤에 거룩한 천사들은 “땅에서는 평화”라고 노래했습니다. 세상에 오시는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평화의 왕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십니다. 성 사도 바울로는 감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로마서 5,10-11)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하기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형제들 중 관계가 흐트러진 사이가 있다면 우리가 그들 사이를 평화롭게 만들고 화해시키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큰 소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작은 오해로 인해 서로 말을 하지 않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면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또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대화를 건네지 않고, 자녀들도 부모님께 말을 하지 않는 모습도 안타깝습니다. 친척이나 동료를 향한 적대적인 행동도 많이 목격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손으로 상대를 때리는 행동을 넘어서 범죄에 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여성에 대한 학대와 부부간의 다툼이 증가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이혼이나 가정의 해체로 이어져,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와 부정적인 영향을 자녀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경우도 증가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현상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슬픈 사건들에 대해 알게 된 순간부터,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사이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한다면 이 노력은 매우 값지고 유익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만약 어느 곳에 불이 난다면, 불씨가 커진 뒤에 불길을 잡는 것보다 처음에 불을 끄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화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해를 위한 노력은 가능한 한 빨리 시작되어야 합니다.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를 많이 한 후에, 또 성령의 인도를 받은 후에, 진실한 사랑과 겸손의 마음으로, 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당연히, 이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친구가 있다면, 분별력 있게 그 친구의 도움을 구해도 좋습니다. 그 친구가 삶에서 우러나온 경험을 통해, 다툼을 겪고 있는 이들 사이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화를 가져오려고 애쓰는 사람의 노력은, 그리스도 없이는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평화의 중심이시고 근원이신 그리스도로부터만 샘솟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바울로 사도는 이방인들에게 기쁨과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부름을 받고 파견되었을 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소 2,14)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로마서 5,1)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가져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과 노력과 고통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많은 기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거룩한 노력에 우리 혼자가 아니라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주님께서 우리 편에 계신다는 것을 알면, 이 모든 것은 가능해집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 희보의 순간 때 확증해 주었듯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루가 1,37 참조)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구세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방법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과 하느님 사이의 화해를 위해 모든 것을 하셨고, 이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간의 화해를 위해 팔 걷어붙이는 것을 망설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괜히 참견했다가 문제 생기면 어떡할래?”, “오히려 너한테 곤란한 일만 생길 거야.”등과 같은 걱정들 말입니다. 물론 실제로 우리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이 하느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고 갈등을 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은 편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들 간의 화해를 위해 모든 방법을 사용했는데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거나, 갈등을 겪는 자들이 제삼자의 개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선한 그리스도인은 이제 자신의 열렬한 기도에 매진하며 이 문제를 위대한 평화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맡깁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들의 일은 힘들지만 유익한 결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어떤 다른 나라 정교회 대교구의 “가족 지원 센터” 직원들은 어떤 한 해에만, 이혼을 위해 법원을 찾았던 600쌍 이상의 부부를 화해시켰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인 가정 600 가정이 해체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외에도 가족들 간의 화해를 위해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고, 그 역시 선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사랑과, 다른 사람의 자유에 대한 존중과, 적절한 분별력을 가지고, 사람들 간의 평화에 기여하도록 노력합시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일일 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늘나라에서 왕의 가족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로 인정받으며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 위대한 직분의 큰 영예, 이 은혜의 크기와 가치, 영원토록 이어지는 유익함을 이해하셨습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위가 높고 부유한 왕실 가족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자녀들”, 즉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왕실 가족의 영광은 일시적이지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영광은 불멸하며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는 이 큰 영예를 누리기에 합당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