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성 테오파니스 증거자
성 테오파니스 증거자(3월 12일)
귀족 가문의 아이
성인은 성화 파괴자인 콘스탄티노스 5세(코프로니모스, 741-775 재위) 황제가 다스리던 759년 콘스탄티노플의 한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되던 해에 부자 상속녀인 메갈로(Megalo)와 약혼을 하게 되었다. 그 후 팔 년이 지나 결혼식 전 날 저녁 두 사람만이 있는 자리에서 성인은 언제나 수도자가 되려는 열망을 지녀왔음을 고백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남매처럼 금욕하며 살자고 설득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메갈로 아버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두 해 동안이나 결혼한 몸으로서 순결을 지키며 살았다.
수도자가 된 부부
그런데 마침내 신부의 아버지는 레오 황제(Leo IV, 775-780)로부터 성인이 키지코스(Cyzicus: 소아시아 북서부 미시아[Mysia] 지역의 도시)의 통치자로 임명되도록 하면 이 직책을 맡음으로써 성인이 수도자가 되려는 생각을 버리게 되리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인은 장인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도리어 자신의 시간을 이용해 그 지역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황제가 죽자 섭정자인 이리니(Irene, 752-803 생존) 황후에게 사의를 표한 다음, 노예들에게 자유와 함께 막대한 재산을 나누어 주고는 아내를 한 수도원에 데려다주었다. 본인도 키지코스 가까이에 있는 한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어 필경사(筆耕士, copyist)로 일하면서 육 년 동안 수도원 근처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바른 가르침의 증거자
그 후 시그리아니(Mount Sigriane)로 되돌아온 성인은 그곳에 수도원을 세웠으며, 이 수도원은 당시 가장 이름난 영적 시설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금식과 철야예배, 눈물로 당신의 영혼을 단련하고 순결하게 하며 모든 이들에게 살아있는 완벽한 수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787년 제7차 세계공의회(니케아)에 참석하여 성상 공경의 올바른 가르침을 고백했기에 815년 레오 5세(Armenian, 813-820 재위)에 의해 소환되었으며, 수도원은 불태워졌다. 이어지는 감금과 회유, 유폐(幽閉), 그리고 사모스라키(Samothrace)로 추방되는 고통을 겪던 성인은 817(또는 818)년 3월 12일 당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