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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에게는 사람이 없습니다.”(요한 5,7)

monastery 2024. 6. 4. 01:10

 

 

“선생님, 저에게는 사람이 없습니다.”(요한 5,7)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제까지 그 어느 시대에도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혼자서 개인적으로 살아온 시대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외로움에 관한 문제로 매일 고통받으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심리적, 정신적 문제인 외로움을 치료받기 위해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수천 명이 오가는 속에서 자신은 혼자라고 느끼는 이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수많은 이들이 사는 아파트 건물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사회에서 동료 한 명도 없이 지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수백만 명이 사는 도시에 있으면서 사막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내 고통을 나누고 비밀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 없이, 죽을 때까지 혼자서 도움이 없이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현대인의 문제인 외로움을 치료해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대체 누가 가르쳐줄까요? 다른 전문가들처럼 여러 자격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몇 배나 더 훌륭한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중풍병자입니다. 이 중풍병자가 오늘 우리의 외로움을 치료해 줄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한번 주의 깊게 살펴보겠습니다.

 

베짜타 못가의 중풍병자는 심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38년 동안이나 앓으며 누워있었습니다. 혼자서 일어설 수가 없었고,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몸이 마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러한 불행의 시간을 혼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내버려 두었고, 그는 다만 아주 조금의 자비와 애정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비와 애정을 과연 누구로부터 바랄 수 있을까요? 친구로부터 받을 수 있을까요? 잘 아는 친구에게서도 결코 받을 수 없었습니다. 즐길 때만 곁에 있는 친구는 신뢰 있는 친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즐거울 때만, 이익되는 일이 있을 때만 친구로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나선 우리를 저버릴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오늘 복음 말씀에서도, 중풍병자 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즉 수많은 병자, 수많은 친척, 관심을 보이는 많은 이들, 지나가는 많은 행인이 있었지만 그는 혼자였다고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대해 불평하듯이 “저에게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이지, 친척도 친구도 고향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낫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중풍병자에게 자기 자리를 내어 주는 사람이 없었고,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눈앞의 기적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냉정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모두 속으로 ‘기적은 맨 먼저 나에게, 내가 아는 사람에게 일어나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사의 날개는 못의 물을 움직였지만, 사랑의 날개는 어느 누구의 마음도 감싸 안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풍병자는 인내로써 기적을 기다리며 그 많은 세월을 혼자서 보냈습니다. 불이 켜진 초가 하나 있고, 그 앞으로 다섯 명, 열 명, 백 명, 수천 명이 지나가면서 촛불을 끄려고 바람을 부는데 꺼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기적 같은 일이 아닙니까? 중풍병자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희망의 촛불이 켜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의 옆을 지나간 사람들이 자비와 사랑을 주지 않았음에도, 그 희망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중풍병자의 상황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줍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마음에서 희망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에 나오는 말씀,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서 5:5)라는 말씀처럼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면 희망은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1년, 2년이 아닌 38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웃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겠습니까? 어느 누가 38년 동안을 침대에 누워서 꼼짝 못하고 세월을 보낸 것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인내와 믿음이 있었고, 기적에 대한 희망이 꺼지지 않았기에 드디어 그에게 위대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고통으로 흐릿한 눈을 했던 중풍병자는, 완전한 신이며 인간이신 예수님의 자비로운 눈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의 앞에 서신 분으로,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38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왔던 그 기적이 간단한 말 한마디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중풍병자로부터 배우는 두 번째 가르침은, 절대로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저버린다 해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완전한 신이시며 인간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부활 후 우리에게 하신 약속,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20)라는 그 말씀대로 우리 곁에 서 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반복되는 불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저에겐 사람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너를 위해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도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너를 위해 조롱당하고, 침 뱉음 당하고, 채찍질당하고, 가시면류관을 썼다. 그런데도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너를 위해 십자가에 달렸다. 그런데도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너를 위해 피를 흘렸다. 그런데도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너를 위해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도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가?”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는 우리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하느님의 자비가 넘치는 바다와 같은 곳입니다. 교회는 24시간 운영하며 무료로 모든 병을 고쳐주는 공공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그러하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에겐 사람이 없다고 변명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보통의 사람은 없을 수 있지만 완전한 신이며 인간이신 분은 항상 곁에 계십니다. 보호자이시고 전능하신 조력자이신, 완전한 신이며 인간이신 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곁에 항상 계십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의 말씀,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말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처럼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주님 곁에 있으면 주님도 항상 우리 곁에 계실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우리에게 닥쳐도 주님을 향한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완전한 신이며 인간이신 주님께서 항상 우리를 지켜보시며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우리 곁에 계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