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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을 맞아

monastery 2024. 6. 25. 01:10

 

오순절을 맞아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오순절 대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봉독했던 사도행전의 말씀에서는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당신을 나타내시는 방식이 아주 흥미롭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절 말씀에 따르면, 성령이 “각 사람 위에 내렸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은 제자들 각각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이고 추상적으로 내린 것이 아니라, 성령을 기다리고 있던 각 제자들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하게 내렸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기다리는 이 기대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열매인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흔히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성령 강림을 위해 부활하시기 전에도, 부활하신 후에도, 사도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기다렸다는 표징은 그들이 한 장소에 모여있던 것에서 드러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성령의 은사라는 기쁨과 보물을 서로 나누려고 준비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이 그들이 개인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자신들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시작한 일을 자신들이 계속 이어가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이 내려오시기를, 한마음 한뜻으로 기다렸습니다. 서로 간의 일치와 연합을, 각자의 신념이나 재능, 지식, 능력보다 더 우선시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렇게 하나로 품었던 생각은 그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교회에 속해있을 때, 우리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하나가 될 때,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갈망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열정적으로 찾고 사랑할 때, 우리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기꺼이 제쳐 놓을 때, 우리 또한 성령을 받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은 많은 경우에, 특히 요즘과 같은 전자 문명 시대에는,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며 살아갑니다. 현대인들은 개인적인 인정과 성공을 위해 많은 능력과 재능을 얻고 싶어 하지, 전체 사회의 이로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가며 무언가를 제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회는 ‘화합’이나 ‘사랑’이나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나 ‘공동 구원’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영광을 목표로 하는 각각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어떤 것도 개인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세상의 구원을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피를 흘리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잘 기억하며 조심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다른 형제들과 하나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다른 신자들과 하나가 되지 않고,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홀로 소외감을 느끼며 살고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에서 홀로 떨어진 고아라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이기심을 극복하면서 다른 모든 “성령 안의 형제들”을 느끼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수행하도록 부름 받은 투쟁과 노력도 바로 이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즉, 모든 사람들의 오순절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 개인의 오순절이 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특별히 성령께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개인주의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또,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형제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죄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교회 생활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방식을 우리가 되찾게 해달라고, 단순히 말뿐인 기도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실천과 행동으로 다시 찾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