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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4월 6일] 성 에프티히오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Ὁ Ἅγιος Εὐτύχιος Πατριάρχης Κωνσταντινουπόλεως

 

성 에프티히오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4월 6일)

 

할아버지 손에 자란 아이

성인은 512년경 소아시아 프리지아(Phrygia) 지방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난 성인은 후에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이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다고 생각한 성인은 수도생활을 할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도록 성인을 부르셨고, 그래서 성인은 나이 서른 살에 아마시아의 대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본래 대주교는 성인이 라지카(Lazica)의 주교가 되길 바랐으나 다른 사람이 그곳의 주교로 선출되었으므로,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대로 아마시아에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나중에 그곳의 수도원장이 되었다.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서

유스티니아노스 황제(527-565) 시대에 네스토리오스 이단자들을 교회에서 추방하기 위해 지역 공의회가 열리자, 건강이 나빠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아마시아의 대주교를 대신하여 성인이 참석하였다. 그리고 공의회에 참석한 이들은 성인의 깊은 성서 지식과 이단자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미나스 총대주교(8월 25일)가 직접 지명한 후계자로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에 오르자마자 성인은 황제를 설득하여 553년에 제5차 세계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성인이 주재한 이 공의회에 참석한 165명의 주교들은 앞서 네 차례의 세계 공의회에서 결정한 가르침들을 확증함과 더불어 네스토리오스 이단자들의 가르침과 오리겐, 에바그리오스를 단죄하였다. 

 

고난과 승리

그러나 그 뒤 성인은 새로운 이단적 가르침(단성론 Monophysite)에 빠진 황제가 옹호하는 교리에 반대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565년 1월 25일 성찬예배를 집전하는 도중에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끌려 나와 칼케돈의 수도원에 감금되었다. 이후 총대주교직을 박탈당한 성인은 아마시아의 수도원으로 보내졌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12년의 유배생활이 끝나고 576년에 신자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다시 총대주교직에 복귀한 성인은 때로 도시를 휩쓴 전염병을 기도로 물리치기도 했고,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성찬예배를 드린 뒤에는 여섯 시간 동안 안티도로를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참된 신앙과 기적의 힘으로 교회를 굳건히 하시던 성인은 582년에 평화로이 안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