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아카키오스 수도자 (4월 12일)
가난한 집안의 소년
성인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아그라파(Agrapha) 지역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셨다. 집안이 가난하여 어려서부터 일을 해야만 했고 별다른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다만 거룩한 것에 대해 알고 싶은 간절한 열망으로, 성당에서 거행되는 예배와 성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가 정해준 결혼을 피하고자 집을 떠난 성인은, 올림푸스의 성 디오니시오스(1월 23일)가 세운 자고라의 성삼위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거룩한 덕을 쌓기 위해 열정적으로 정진했으며, 자신의 의지를 꺾음으로써 특별히 겸손의 덕을 배우고자 노력하였다.
극한의 영적 투쟁
하느님을 향한 열망과 영적인 목마름이 더욱 강해지자, 성인은 아토스 성산으로 가서 남쪽 지역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20년 동안 오로지 약간의 빵과 야생 열매만으로 생활하였다. 이후 수년 동안은 바닷가 동굴에서 지내며 극도의 영적인 투쟁을 이어갔다.
이러한 수련의 결과로 성인은 분별과 예언의 은총을 받아, 찾아오는 이들에게 영적인 조언을 베풀기 시작하였다. 비록 깎아지른듯한 절벽에 자리한 거처였지만, 하느님의 은총이 강렬하게 비추었기에 방문자들에게 오히려 평화와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 주는 장소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성인의 제자가 되어 동굴 주위에 머물며 하나의 스키티(Skete, 집단적 은수 생활 공동체)를 형성했고, 이곳은 훗날 캅소칼리비아(Kavsokalyvia)라 불리게 되었다.
수도자들의 영적 아버지
제자들의 요청에 성인은 샘이 터져 나오게 하여 풍부한 물을 얻게 하였지만, "우리의 육체가 쾌락으로 흐르지 않도록 언제나 엄격한 금식을 지켜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근대의 순교자 성 니코데모(7월 11일)가 찾아와 조언을 구하자, 성인은 그를 위해 기도하고 당신의 지팡이를 주며 오스만 제국의 고위 관리인 파샤(Pasha) 앞에 나아갈 때 지니고 가도록 하였다.
당시 아토스산 남쪽의 수많은 수도자는 성인을 영적인 아버지로 존경하며 따랐다. 고령에도 지팡이 없이 지내던 성인은 1730년 4월 12일 평화로이 주님 품에 안겼고, 아토스 성산의 모든 수도자가 눈물로써 그분을 애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