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필립비 3,10)
우리 주님의 부활은 평범한 역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일어난 모든 사건 중에서 가장 독특하며 위대한 사건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로 이 부활이라는 놀라운 기초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활은 신앙인에게 끊임없이 솟아나는 크나큰 영적인 힘의 근원이 됩니다.
사도 바울로는 주님의 부활과 그 부활에서 나오는 힘 앞에 놀라,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는" 것을 가장 간절히 바랐습니다.
1) "그리스도를 알고"
무지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 무지의 대표적인 예였다고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는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습니다. 아니 아주 없애 버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갈라디아 1,13)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모르고 한 일이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를 자비롭게 대해 주셨습니다"(디모테오 전 1,13)
하느님을 아는 것, 그것도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제적이고 경험적으로 아는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은혜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 곧 주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그리고 우선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험적으로 주님을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는 노력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아는 것이 우리 삶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야 하므로, 우리 자신을 돌보는 일이 제1의 관심사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그분 자신에 대해 배우는 것이 우리 자신에 대해 배우는 것보다 더 귀중하게 느껴져야 하며, 또 그렇게 되기를 열렬히 바라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되면,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상태나 위치를 우리가 자동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천문학자들은 우주를 지배하고 물질세계에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신비로운 인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또한 지구에까지 도달하는 놀라운 태양광선과 다른 천체의 빛에 대해서도 말하며, 우리는 이들의 속성과 작용 방식에 대해 연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에서 나오는 힘에 대해 진정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요? 누가 감히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모든 영적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또 지금도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고 있을까요? 혹시 성모님의 기적과 성인들의 기적은 기적 중의 기적인 주님의 부활이 먼저 선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형제 여러분, 주님의 부활은 모든 기적, 즉 성모님과 성인들의 중보로 일어났던 온갖 기적의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오순절의 기적, 우리 교회의 순교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기적뿐만 아니라, 티노스와 에기나 성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대의 기적들 역시 모두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들은 개인주의가 범람하는 오늘날에도 부활하신 주님의 초능력은 과학의 힘이나 핵 에너지의 힘에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는 것을 명백히 증명해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