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티리오스 대주교님 안식 4주기를 맞아
백은영 아가티 수녀
2026년 겨울, 그리스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유독 특별하고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 아테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지인들과 함께 대주교님의 고향인 ‘아르타’행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표지판에 적힌 ‘아르타’라는 글자를 마주한 순간,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참았던 감정이 왈칵 쏟아지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대주교님께서는 생전 췌장암으로 투병하시던 중, 마지막으로 고국 그리스와 임지였던 튀르키예를 여행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당시 주치의의 여행 허락이 떨어져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지만, 끝내 병세가 악화되어 그 간절했던 여정을 떠나지 못하셨습니다. 아르타로 향하는 길 위에서 그때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다시금 밀려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아르타에서 대주교님의 친척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함께 빛바랜 옛 사진들을 보며 대주교님과의 추억을 나누는 동안, 슬픔은 이내 따뜻한 위로와 행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해 겨울, 대주교님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저에게 큰 감사였습니다.
언젠가 대주교님께서는 그리스에서 유학 중이던 한 한국인 부부가 당신을 대신해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가 헌화해 주었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았노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기회가 된다면 대주교님 부모님의 묘소를 꼭 방문하고 싶었는데, 마침내 올해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 꽃을 바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대주교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안에서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시작임을 삶과 안식을 통해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얼마 전 우리 수도원에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대주교님께서 튀르키예 알라니아에 세우신 ‘피시디아의 성모 성당’에서 수도 서원을 하신 아가삐 수녀님이십니다. 수녀님은 지금도 매일 대주교님의 묘소를 찾아 기도하며, 그분이 남기신 축복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랜 세월 대주교님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한국 정교회 성당들의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주신 소조스 교수님께서도 올해 6월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6월, 대주교님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이들이 다시 한번 그분의 묘소 앞에 모여 마음 모아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주교님께서 걸어가신 삶의 궤적이 얼마나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번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의 안식 4주기는 단순한 추모와 기억을 넘어, 우리가 나누었던 사랑과 신앙이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이어지는 은총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대주교님께서 남겨주신 고귀한 헌신과 사랑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삶을 밝혀주는 영원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