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향한 경외심(敬畏心)
(소티리오스 대주교)
지난 주일 강론에서는 대연도 중에 "이 성당을 지켜주시고, 주를 믿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에 들어오는 이들을 받아주소서"라는 기도에서 앞부분 "이 성당을 지켜주시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부분 즉 "주를 믿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에 들어오는 이들을 받아주소서"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 기도는 믿음과 경외심으로 거룩한 성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님께 간청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믿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용 중에서 이 경외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물론 경외심이라는 용어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 외에도 '두려움'이라는 뜻도 포함됩니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예를 들어, 화난 사람이 총으로 무장하고 나를 해치려고 다가설 때, 느끼는 그런 두려움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또는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과도 다른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하시고 자애로우십니다. 그리고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을 우리에게 주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 중에 "너희 하느님 주를 경외하여 그에게만 충성을 당하고 그를 섬겨라. 맹세할 일이 있으면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여라."(신명기 10,20)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여러 이야기를 전했고, 그중에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이제, 너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너희 하느님 주를 경외하고 그가 보여주신 길만 따라가며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쏟아 그를 섬기는 것이 아니냐? (신명기 10,12)
네가 찬양할 이는 그분뿐, 그가 너희 하느님이시다. 네가 본 대로 너를 위하여 그 크고 두려운 일을 해주신 하느님이시다." (신명기 10,21)
바울로도 같은 의미로 강조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경건한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히브리 12,28)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의 경외함을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이 경외함의 단어에 깊은 존경과 예의 바른 마음가짐까지 뜻을 포함)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겠다" (예레미야 39,40)
경외심은 믿음을 통해 주님과 연결되는 사람에게 하느님에 의해 주어집니다. 또한 경외심이란 빛남과 믿음의 반영이며 신성한 은총의 산물입니다. 신자가 마음 안에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간직하고 있다면 우선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놀라워하면서 그리고 깊은 공경심을 가지고 그분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영적으로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경외심과 하느님에 대한 깊은 공경, 즉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세상의 창조주이신 그분께 전적으로 나 자신을 맡길 수 있게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에섹스(Essex)의 소프로니오스 성인이 이 내용을 다시 확인 시켜 줍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경외심)은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합당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하느님께 깊은 공경을 느낍니다."
그래서 성찬예배나 다른 여러 예배에서 하느님께 경건한 마음으로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며 표현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도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또 주님의 모든 뜻을 행하게 하옵소서" (대만과 제3 기도문 중에서)
"그들로 하여금 항상 사랑과 존경으로 주를 섬기며 합당한 준비 없이..." (교인들을 위한 두 번째 기도문 중에서)
"하느님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믿음과 사랑으로 가까이 올지어다" (성체성혈을 영하러 나올 것을 선언하며)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굳게 하시며 우리 생명을 지켜주시고" (성체성혈을 영한 후 드리는 감사의 기도문 중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는 믿음과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성당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기도드리면 당연한 마음가짐으로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교회에 들어가라는 의미를 상기시켜줍니다. 성당은 평범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성당은 완전히 하느님께 바쳐진 장소입니다.
지성소의 제단에는 항상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하느님의 집인 거룩한 교회에서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한 성당에 있을 때는 이런 생각이 우리 머리 안에 머무르게 하고 영혼과 마음을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불타는 덤불 앞에서 모세가 느꼈던 경외감을 우리도 느낍시다. 그때 모세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성스러운 장소이다". 모세는 이 말씀을 들을 때, 감히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지 못했습니다. 출애굽기 3장 6절에는 " 모세는 하느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당에서 모든 행동을 적절히 가려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소음을 내지 않습니다. 성화에 그려진 성인들에게 존경을 표하면서 입을 맞춥니다. 예의를 지키고 공손한 자세로 촛불을 밝힙니다. 그리고 성당 안에서 거행되는 성찬예배나 혹은 각종 예식들에 정신과 마음을 집중해야 하며, 잡념에 사로잡히거나 급한 일이 아닌 이상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우리를 초청했다고 칩시다. 그런데도 초청받은 우리가 대통령을 외면한 채, 우리끼리만 모여서 대화 할 수 있을까요? 그로므로 당연히 이런 행동이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성당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찬예배에서 천사가 어떻게 하느님을 영접하는지 헤루빔 성가를 통해서 듣습니다. 천사들은 어떻게 하느님의 보좌 앞에 서 있습니까?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고 이사야 예언자가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사야서 6,2). 천사도 이럴진대 우리는 하느님의 성당에서 얼마나 더욱더 자세를 낮추고 경건하게 서 있어야 하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께 신성한 경외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우리가 드리는 예식들이 하느님께서 받아주실 수 있도록 항상 뜨거운 믿음과 거룩한 경외심과 따뜻한 사랑으로 주님을 경배하는 합당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