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1월 20일] 성 에프티미오스 대수도자

Ὁ Ὅσιος Εὐθύμιος ὁ Μέγας

 

성 에프티미오스 대수도자 (1월 20일)


성인은 그보다 몇 년 앞서서 성 대 안토니오스(1월 17일)와 그 제자들이 에집트 사막을 가득 채웠던 것처럼, 한 때 팔레스타인 사막을 가득 메웠던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였으며 위대한 영적 지도자였다. 성인은 378년 유프라테스강 가까이 있는 아르메니아의 도시 멜리띠니에서 태어났다. 

성인의 부모인 바울로와 디오니시아는 결혼한지 오래 되었으나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께 자손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성인을 낳게 하셨다. 에프티미오스라는 이름의 뜻은 ‘좋은 원기’, ‘좋은 기분’, ‘신뢰’, ‘기쁨’이라는 뜻이다.

 

성인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아버지(바울로)가 죽었다. 그러자 어머니 디오니시아는 이전에 약속한대로 성인을 하느님께 바치기로 하고 자신의 형제인 에브도히오스 신부를 통해 이제 겨우 세 살인 에프티미오스를 그 지역의 오트리우스 주교에게 맡겼다. 주교는 에프티미오스에게 세례를 베풀고 오래지 않아 그를 봉독자로 임명하였다. 주교의 보살핌 속에 덕성을 기르고 절제된 생활을 익히던 에프티미오스는 성경을 부지런히 공부하였고, 정신을 집중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곤 하였다. 또한 신현 축일로부터 부활절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는 깊은 사막으로 가서 예언자 엘리야와 세례자 요한을 본받아 고독과 침묵 속에 지내곤 하였다.

 

이같은 빛나는 덕으로 무장한 성인은 열아홉 살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동시에 그 지역의 모든 수도원을 책임지게 되어 십 이년 동안 그 직무를 잘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 뒤 성인은 예루살렘으로 옮겨 홀로 은둔(隱遁)하면서 기도와 금식에 전념하며 살았고, 생계를 위해서는 밧줄(로프)을 꼬아 만드는 일을 하였다. 성인은 여기서 일생을 두고 영적인 동반자로 지냈던 테옥티스투스 성인(9월 3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매년 두 성인은 사순절 내내 사해(Dead Sea)에 가까운 사막에서 보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의 인도로 한 동굴을 발견한 그들은 곧 그곳에 머물기로 결정하고,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채 주위에서 자라는 향료식물(herb)만을 먹으면서 지냈다. 그러나 결국 그 지역의 목동들이 그들을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근처의 마을사람들은 성인들에게 빵을 가져왔다. 그리고 많은 수도자들이 그곳을 찾아 성인들과 함께 기거하게 되었다. 홀로 은둔하며 수도하기를 즐겨하던 에프티미오스 성인은 테옥티스투스 성인을 수도원장으로 하여 공동으로 거주하는 수도원을 세웠다.

 

한편 성인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420년의 어느 날 한 유목민(Bedouin, 베두인) 족장의 병든 아들을 십자가 성호로써 고쳐주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여러 베두인들이 세례를 받고 성인의 제자가 되었고, 족장 자신은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뒤 팔레스타인의 여러 유목민족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열렬한 선교사가 되었다. 얼마 뒤 베드로는 많은 베두인과 세례 예비자들을 성인에게 데리고 와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리고 새로이 그리스도인이 된 베두인들은 성인의 곁을 떠나지 않은채 성인을 위해, 입구가 두 개인 커다란 물탱크와 빵집, 그리고 한 가운데 작은 기도실이 딸린 세 개의 방을 지어주었다.

 

또한 성인은 제 3차 세계공의회(에페소, 431년)와 제 4차 세계공의회(할키돈, 451년) 사이의 혼란스런 시기에도 교인들을 위한 진리의 시금석(試金石, touchstone)이었으며, 정교(Orthodoxy)를 지탱하는 기둥이셨다. 성인은 당신의 제자들을 두 공의회에 보냈으며, 그들은 그  두 회의의 진행과정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한 제 4차 공의회 뒤 네스토리우스주의(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느슨한 결합을 주장하면서 성모님에게 주어진 ‘하느님을 낳으신 분’[테오토코스]이라는 칭호를 반대함으로써 제 3차 에페소공의회에서 파문된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파)의 온갖 위협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성인과 그 제자들은 정교의 믿음을 꿋꿋이 잘 지켜냈다.

 

그 뒤 90세가 된 성인은 성 테옥티스투스 수도원장을 방문하여 그의 마지막 안식을 지켜 보았고, 장례식을 치른 뒤 새로운 수도원장을 임명하였다. 성인은 자신이 하느님 곁으로 돌아갈 날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고령에도 불구하고 사순절을 사막에서 보내곤 하였다. 성인은 생의 마지막 삼 일 동안 지성소 안에 머물러 있은 뒤 473년 1월 20일에 평화로이 안식하였다. 수많은 수도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교인들이 사막의 교부이신 성인의 장례식에 모여들었고, 그 자리에서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으며, 성인이 머무르던 동굴에 위치한 무덤에서는 오래도록 그같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전 교회는 즉시 성인을 위대한 교부들 가운데 한 분으로 공경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