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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2월 14일] 성 아우그센디오스 수도자

 

성 아우그센디오스 수도자 (2월 14일)


페르시아인 장교

성인은 5세기 무렵 샤푸르 2세의 박해를 피해 시리아에 이민 와 사는 페르시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테오도시오스 2세(408~450)의 통치기에는 콘스탄티노플로 와서 궁정 근위대의 장교로 임명되었으며, 경건함과 성실함으로 황제와 동료들에게 높은 존경을 받는 동시에 덕과 금욕적인 생활에서 뛰어난 인물들(성 마르키아노스 사제, 1월 10일)과 금식, 기도, 철야예배를 드리며 친교를 나누었다. 성인과 동료들은 마르키아노스 성인이 세운 성 이리니 성당의 철야예배에 가능한 대로 자주 참석하였으며, 잘 알려진 ‘기둥의 성인’인 성 요한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헵도몬(황제의 궁이 있던 곳) 지역을 또한 빈번히 방문하기도 하였다.

 

은둔자로 살다

거룩한 삶과 초기의 기적들로 인해 성인의 명성이 높아졌으나, 그는 도리어 세상의 번잡함과 심지어는 친구들도 피해서 한적한 곳을 찾았다. 근위대의 장교직을 사임한 다음, 오히아(할키돈에서 6마일 정도 떨어진 곳) 산에서 세례자 요한처럼 동물의 털옷을 입고는 완벽한 무명인으로 지냈다. 그러나 우연히 그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어 그의 작고 허름한 거처를 찾아오는 방문자들이 증가하였으므로 하는 수 없이 시간을 정해 작은 창문을 통해서만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올바른 가르침과 수도 생활

할키돈에서 제4차 세계 공의회가 열려 에프티헤스(Eutyches) 이단을 단죄하였을 때, 겸손한 성인은 황제의 명을 받고 회의에 참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肉化)와 두 본성의 신비 등에 대한 공의회의 결정들을 올바르게 지지하였다. 이후 그는 스코파 산으로 가 머물렀으며, 이곳은 나중에 성 아우그센디오스 산으로 불리며 비잔티움 수도원 생활의 중심점이 되었다. 성인을 찾아와 조언을 구하던 이들 가운데 황후 풀케리아의 시녀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마침내 성인의 지도를 따라 산의 밑자락에 거처를 마련하고는 수녀가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각 계층의 여인들이 모여들어 수녀의 수가 70명이 되자, 성인은 그들을 위한 수도원을 지어야만 했다. 이처럼 열렬히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던 성인은 470년 2월 14일 평화로이 안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