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은 건강이 좋지 않았던 당신을 오랫동안 정성껏 헌신적으로 봉양한 아가티 수녀님에게 유언과 같은 서신을 남기셨습니다.
이에 아가티 수녀님은 대주교님의 안식 1주기를 맞아 그 서신에 대한 답서 형식으로 영적 아버지를 추념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을 우리 수도원의 블로그에 올립니다.
나의 영적 아버지이신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께
나의 영적 아버지이신 대주교님,
대주교님께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제가 이렇게 질문을 드렸지요. "제게 유언으로 남길 서신은 없으신지요." 미소를 지으시면서 물론 ‘있다’라고 대답해 주셨고 나중에 받게 될 거라고 하셨어요.
대주교님께서 안식하신 후 그다음 날의 장례식 때 수녀님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낭독되는 순간 제게 남긴 편지가 ‘있다’라는 대주교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영적 아버지이신 대주교님,
제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서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답서를 이렇게 안식하신 지 일 년이 되어서야 써봅니다.
처음에는 대주교님께서 유언과 같은 서신을 2008년에 미리 써 놓으셨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2008년에 팔순 잔치를 하시고, 그때부터 세상과 언제든 작별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지내셨음을 알았습니다. 2008년에 한국 정교회 대교구장직을 내려놓으신 이유도 건강이 좋지 않다고 느끼셨고, 그 이후로도 심장 이상으로 많이 힘들어하셨지요.
나의 영적 아버지이신 대주교님,
저는 대주교님과 함께 22년을 수도원에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대주교님께서 계시지 않는 저의 수도원 삶은 어떨까요?"라고 여쭈어 보았지요. 대주교님께서는 손수 마련해 놓으신 묘소가 보이는 쪽을 가리키시면서 수도원에서 지내신 방에서 저쪽 묘소의 방으로 옮기는 것뿐이라고 하셨어요. 대주교님께서 계시지 않는 삶을 경험하지 않고 들은 대답이기에 정확한 뜻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뜻을 이해한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대주교님은 계셨던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기셨고 그 방은 수도원 창문을 통해서 언제나 바라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나의 영적 아버지이신 대주교님,
주님께서 저와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지금 제가 이런 나날들을 보내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대주교님께서 안식하신 순간 저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대주교님께서는 안식하셨고 장례를 치르고 묘지에 묻히셨는데 언제나 저와 함께하심을 느낍니다. 참으로 방을 옮기신 것뿐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더욱더 강렬하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다시 만날 희망을 주시고 잠드신 대주교님,
천국은 천사들과 기쁨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병상에서 힘든 투병 시간을 보내셨지만, 대주교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하늘나라에 속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 성모님, 천사들, 성인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셨던 사랑하시는 부모 형제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기뻐하시는 모습을 느낍니다.
나의 영적 아버지이신 대주교님,
병상에서도 많은 축복도 주시고 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다시 만나자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대주교님께서는 제게 떠나신다는 것보다는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주셨고 기도 안에서 친교는 계속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주교님의 모든 것을 수도원에 남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수도원에 계십니다. 대주교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 뿌리 깊게 내리시고 하늘에 닿을 만큼 크신 나무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기쁜 영원한 세상에 계시면서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나의 영적 아버지이신 대주교님,
주님 승천 축일 종례일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영혼토요일에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조용하게 장례가 치러지기를 원하셨던 뜻과는 달리 주님께서 베푸신 섭리로 세상 곳곳의 성당에서 대주교님을 위한 기도가 함께 올려졌습니다. 한국에서,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소아시아의 피시디아에서 열정을 다해서 선교하신 열매로 영적 자녀들이 된 정교인들이 대주교님을 기억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대주교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영적 자녀들과 친척들 그리고 지인들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드릴 수 있었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영적 아버지이신 대주교님,
하늘나라로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시면서도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그리스의 크레타섬에 있는 흐리소삐기 수녀원에 갔다 오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물론 그 당시 그 선물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선물을 받았다가 제가 대주교님께서 마지막 가시는 날 먼 곳에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안식하시고 나서도 마지막 선물을 받으시라고 재촉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흐리소삐기 수녀원을 방문했고 이곳에서 대주교님께 지금 답장을 씁니다. 뽀르피리오스 성인께서 축복하시고 사랑하셨던 이 수녀원에서 대주교님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저에게 큰 선물을 주신 대주교님께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요!
나의 영적 아버지이신 대주교님,
이제 더 이상 제게 목소리를 들려주실 수 없으시지요. 이제 더 이상 대주교님의 손에 친구하고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제 앞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에서 목소리를 들려주실 것이고 축복해 주시고 저와 함께하시리라 믿으니 슬픔이 기쁨으로 바뀝니다. 한없는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행을 마치고 영원한 세상에 가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나의 영적 아버지이신 대주교님,
결코 쉽지 않았던 투병 기간이었지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님께서 함께해 주셨고 한국에 계신 신부님들과 사모님들 그리고 아타나시아 봉사자님, 마리나 예비수련자님 그리고 수많은 신자들의 기도와 정성 그리고 관심, 사랑, 기도 안에서 대주교님을 끝까지 모실 수 있었습니다. 대주교님께서 이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을 사랑이신 하느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드립니다.
2023년 6월 10일
아가티 수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