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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니라.”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니라.”

소티리오스 대주교


주님께서는 구복단이라는 “황금의 줄(chain)”의 세 번째 고리에 ‘온유한 사람들에 대한 축복’을 두셨습니다. ‘겸손’과 ‘죄에 대한 도덕적 민감함’이라는 두 가지 초석 다음에, 온유함을 두셨는데, 온유함이라는 덕목은 앞선 두 덕목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에 ‘겸손’과 ‘우리의 영적 빈곤함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에 온유함, 관대함, 우리의 형제들에 대한 관용의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온유함이 없으면 아주 사소한 경우에도 화를 내며 분노한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의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쉽게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은 ‘이기심’과 ‘교만’,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에서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위협하고, 남에 대해 모욕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해 구복단의 세 번째 부분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니라.”(마태오 5:5)

 

그렇다면 주님께서 축복하시는 ‘온유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온유한 사람들은 영적 투쟁을 통해 온유함을 얻는 데 성공하여, 매우 어려운 분쟁에서도 침착함과 이해심, 타협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원한을 품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온유함은 멸시와 모욕과 부당함과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이러한 적대적인 상황을 인내와 침착함, 화해하려는 마음으로 대처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이른바 ‘불에 기름을 붓지 않기 위해’ 침묵을 유지합니다. 또 어떤 때는 부당함을 당하더라도 한걸음 물러나거나, 또는 부드러운 말과 상대방을 진정시키는 말로 대응합니다. 바울로 사도는 제자 디도에게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칠 때 다음과 같이 하라고 권고합니다. “아무도 헐뜯거나 싸움질을 하지 말고 온순한 사람이 되어서 모든 사람을 언제나 온유하게 대하도록”(디도 3:2) 가르치고, “우리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로마 12:18 참조) 지내도록 가르치라고 권고합니다. 당연히, 온유한 사람들은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그분의 교회와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련을 겪을 때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교육하시기 위해 내리시는 지혜로운 결정에 순종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을 분별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온유한 사람들은 겁이 많아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똑똑하지 않고 하찮은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온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잘 조절할 수 있기에 누구보다도 더 강한 사람들입니다. 부당한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화를 내지 않는 것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신적 힘과 강인함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분노에 쉽게 사로잡히는 사람은 정신적 약점, 진지함의 부족, 도덕적 실행력의 부족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무능하고 비겁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의 침착한 인내는 장애물을 극복하게 하고, 성격 가운데 가장 제멋대로인 부분조차 길들이게 하고, 마침내 이 인내가 계속 우세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온유함이란 나약함도 둔함도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온유함이란, 다른 사람들이 화나고 맹렬한 상태에 있을 때 꼭 필요한 영웅적 용기입니다. 승리를 가져오는 영웅적인 용기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마태오 11:29 참조), 동시에 활기와 활동력과 용기와 영웅적 마음이 충만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침착함’과 ‘평정심’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활력을 주며, 악에 지지 않는 불굴의 힘이 됩니다. (참고로, 악이 우리를 괴롭힐 때는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항하고 싸워야 합니다.) 

 

온유함으로 그리스도를 본받고, 겸손과 온유함과 인내로써 다툼과 원수를 피하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은 보상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니라.”라고 확증해주고 계십니다.

이전 설교에서 살펴보았듯이, 보상은 이생에서 시작되어 영생에서 온전하고 완전하게 주어집니다.

 

이생에서 받게 되는 보상에 대해 살펴보자면,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온유한 자가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해나갈 때, 온유함 때문에 본인이 지켜야 할 모든 정의를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반대를 보증해 주십니다. 즉,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지 않는 자, 부당하게 요구하지 않는 자는,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주님께서는 확언하십니다.”

 

재산을 늘리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대담한 사람은 종종 재산을 잃기도 하지만, 더 나쁜 것은, 무엇보다도 영혼을 잃는다는 점입니다. 시편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은 땅을 차지하고, 태평세월을 누리리라.”(시편 37:11) 우리 주님의 초대는 감동적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오 12:28-29) 정신적 평화는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당연히 도움이 됩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 즉 가정에 있든, 사회에 있든, 평화롭고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음을 느끼며, 주변에 신뢰감을 형성합니다.

미래의 보상은 하늘에서 온전하게 주어질 것이며 이전 구복단에서 살펴본 보상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니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우리 각자가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