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두려워해야만 합니까?
흥미로운 이 질문에 대해, 영적으로 거룩한 수도사의 삶을 살았던 성 뽀르피리오스 수도사제가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들어봅시다.
요한 복음저자가 요한 I서에서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요한 I서 4,18)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우리가 비록 나약하고 잘못이 많다 해도, 영적 죽음을 벗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친구로 여깁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친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요한 15,14)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친구처럼 주님을 바라보고 다가갈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추락하였습니까? 죄를 지었습니까? 우리를 벌하실 거라는 두려움은 떨쳐내고,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실 것이라는 신뢰와 용기를 가지고 친근함과 사랑으로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뛰어갑시다. "주여,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추락하였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합시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를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용서하신다는 것을 진실로 느낍시다.
어떠한 악행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로부터 근본적으로 분리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설령 죄를 지었다 해도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었다고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안전판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정말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복음서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계명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받을 것인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각각 의미, 때, 상황이 있습니다. 두려움도 신앙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좋은 의미를 가집니다. 즉, 아직 내면에 죄의 욕구를 가지고 예전의 사람으로 사는 초신자들에게는 좋은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초보자라면 나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두려움은 꼭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물질적이고, 죄의 욕망에 얽매여 있다면 두려움은 유익한 것입니다. 이것은 첫 번째 단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올라가는 첫 번째 계단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삶으로 계속 나아가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뜨겁게 된다면 두려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엇을 하든 사랑으로 하는 것이기에 큰 가치가 있습니다. 단순히 나쁜 것을 멀리하려고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지 않기 위해)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큰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큰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내려가신 하느님에 대한 우리 온 영혼의 감사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