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향유 가진 여인

 

향유 가진 여인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부활 후 셋째 주일로 향유 가진 여인들을 기념합니다. 이 여인들은 주님 곁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시는 모습을 끝까지 보고 기다리는 용기와 용감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여인들은 주님의 제자들조차 숨게 만든 유대인들의 증오와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럼 이 용감한 여인들은 누구였을까요? 이 향유 가진 여인들도 주님의 여 제자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은 열두 명의 제자들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다니셨던 사역에 함께 했었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면서 지금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주님께서 수난당하실 때 자리를 비우지 않고 그리스도와 계속 함께 하며 그분의 고통에 동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주님의 장례 후에, 죽은 이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는 유대인들의 장례 풍습에 따라, 그리스도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주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사도들이 주저했던 것을 향유 가진 여인들은 용감함으로 대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여인들은 무덤을 방문합니다. 여인들의 마음엔 두려움도, 근심도 없었습니다. 용기와 대담함만 있었습니다. 이러한 힘과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들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유일하게 걱정한 것은 무덤을 막아놓은 커다란 돌을 누가 굴려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신적으로는 강했지만, 육체적으로는 연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무덤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돌이 굴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들의 주님이자, 그녀들의 스승이자, 그녀들이 사랑하는 예수님께서는 이미 부활하셨고, 그분의 시신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흰옷을 입은 천사만이 그곳에 앉아, 주님의 부활에 대해 알려주고,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의 소식을 알리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녀들의 믿음과 결심은 하느님으로부터 보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은 향유 가진 여인들의 사랑과 용기에 어떻게 보상해 주셨나요? 그것은 바로 향유 가진 여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큰 기쁨을 맛보게 하고, 처음으로 주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이야기하고 전달하게 하신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세상적인 것들에 얽매여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곁에 서고,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고 선언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향유 가진 여인들은 좋은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배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사람들의 인기를 잃지 않으려고, 직장생활에서나 사회생활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십자성호 긋는 것을 꺼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영적인 빈곤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세상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불성실한 모습입니다.

 

만약 우리가 부활의 영원한 기쁨을 누리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길 원한다면, 주님과 하나가 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는 마음속에 향유 가진 여인들의 사랑과 용기와 용감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매 순간,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주관자이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