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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4월 4일] 성 플라톤 수도자

Ὁ Ὅσιος Πλάτων

 

성 플라톤 수도자(4월 4일)


고아 소년
747년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 지역을 휩쓴 역병(疫病)으로 말미암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성인은 제국의 재정을 책임지는 고위직에서 일하는 삼촌에게 맡겨졌다. 뛰어난 교육을 받은 성인은 남다른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유력한 이들이 그와 친교를 나누고자 애쓰게 되었다. 그러나 성인은 세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과 궁정의 경솔하고 들뜬 생활방식을 싫어했으므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왕궁을 벗어나 성당과 수도원에서 기도하였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에 미련을 버린 성인은 자신의 모든 노예에게 자유를 주었고, 두 명의 여자 형제에게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의 돈을 확보해 주고는 남아 있는 많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형제들의 종이 되다
그런 다음 성인은 단 한 명의 하인만을 데리고는 비디니아의 올림푸스 산으로 가, 하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머리를 자르게 하고는 서로 옷을 바꾸어 입음으로써 매우 소박한 옷차림으로 그곳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설립자이며 수도원장인 테옥티스토스는 처음에 귀족 출신인 성인에 대해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내 탄복하는 마음으로 젊은 수도자(성인)의 영적인 발전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후 성인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써 자신을 죽이기 위해 가장 어렵고 힘든 영적 노고를 스스로 감당하였는데, 한 예로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사본(寫本) 베끼는 일을 그만두고는 대신에 수도원 형제들의 종이 되어 거름을 나르거나 밀가루를 반죽하는 일을 골라서 하였다. 

사쿠디온 수도원
성인의 이런 아름다운 덕으로 말미암아 770년 수도원장이 안식하게 되자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모든 이들이 성인을 수도원의 새로운 지도자로 뽑았다. 그 뒤로도 극도의 절제된 삶을 산 성인은 주중에는 홀로 기름도 넣지 않은 채소만을 먹고 지냈으며, 주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동 식탁에 나와 식사하였다. 780년 이후 여동생 테옥티스타와 남편인 포티노스, 그리고 그들의 세 아들(테오도로스[11월 11일], 요셉[7월 14일], 에프티미오스)과 다른 여러 사람을 수도생활로 이끈 성인은 포티노스와 함께 사쿠디온의 가족 소유 토지를 수도원으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794년 수도원에 대한 책임을 조카 테오도로스에게 맡기고 나서 은둔생활로 다시 돌아갔다. 왕궁의 부도덕을 가차 없이 꾸짖고 그 대가로 모진 유배의 시련과 고통을 겪은 성인은 814년의 사순절 기간 중에 병이 위중해진 뒤 라자로의 부활 토요일에 성가를 부르면서 평화로이 안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