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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이야기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에 대한 추억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에 대한 추억

백은영 아가티 수녀


2022년 5월 31일, 오전에 퇴원 수속을 마치고 이제 성당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하기 위해 앰뷸런스에 탔다. 그동안 곁에서 수고해 주신 간호사님들의 환송도 받았다.
우리가 앰뷸런스에 타고 간호사들이 작별인사로 손을 흔들어 주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희망이었던 병원에서 떠나온다는 의미.
이제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바랐던가! 아무 일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수도원에서 지낼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을 원했던 것이 아닌가.
원하는 것과 현실은 너무나 상반되기 때문에 참으로 슬펐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인인 나는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주님 뜻대로 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항상 주님께 감사드리고 영광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성당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대주교님을 마중하기 위해 많은 교인들이 모여 있었다.
들것에 실려 집 안으로 들어가실 때 대주교님은 교인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 주시고 이들을 축복해 주셨다.
집으로 들어와서는 침대에 누우셔서 성호도 긋고 기도도 드리셨다.
큰 창문에서는 따뜻한 햇살이 비쳤다. 대주교님의 회복을 위해 주신 꽃바구니를 창문에 놓아드렸다. 예쁜 꽃들이 우리를 위해서 미소 짓는다.
향기도 난다. 주위가 환해지고 참으로 아름답다. 대주교님도 이 공간의 꽃처럼 미소도 지어주시고 향기도 내어 주시는 것 같다.
대주교님께서 계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은 너무도 밝고 아름다웠다.

서울성당의 게스트하우스에서도 병원에서 계시는 것처럼 진통제가 계속 들어가고 수액도 맞고 계셨다.
이제 더 이상 맥박이나 심전도는 체크하지 않아도 되었다. 입안이 마르기 때문에 스프레이로 입안을 촉촉하게 해 드렸다.
강력한 진통제가 들어가기 때문에 진통은 없으시다고 하지만 얼굴은 마르시고 아파 보이셨다. 잠을 주무시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갔다.
담당 간호사님은 이제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마지막 작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대주교님께서 잠을 못 주무시고 밤을 꼬박 눈을 뜨고 계신 적도 있으셨다.
이렇게 잠을 못 주무시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간호사님께 알렸을 때 그럼 수면제 약을 가지고 가겠다고 하셨다.
새벽에 급한 상황이 있어 보여서 전화를 했을 때 곧바로 간호사님이 전화를 받아 주셨다. 병원에 있는 것 같은 케어를 받았다.
 한밤중에 곧바로 전화받기가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에게는 급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으시는 것이다.
희생정신이 있지 않고는 이렇게 대응하기 쉽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도움이 꼭 필요할 때 계신 간호사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안식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2022년 6월 9일, 그날이 내게는 생전에 대주교님을 뵐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아침이 밝았다. 햇살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큰 공간, 거실에서 대주교님께 아침 인사를 드렸다.
"대주교님!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어요?"
"음... 응... 음..."
뭔가 말씀은 하고 싶으셨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도 특별한 일 없이 대주교님께서는 침대에 누워 계셨다. 잠이 드셨다가 깨어나시길 반복하셨다. 이날에도 필요하신 조치를 해드리고 하루를 보냈다.
이날이 마지막 날이었다고 알았다면 좀 더 사랑스럽게, 좀 더 조심스럽게, 좀 더 잘해드렸으리라는 후회가 있었다.
주님께서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대주교님을 데려가시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대주교님을 그 가까이로 부르셨다.

대주교님이 안식하신 지 3년이 흘렀다. 그때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병원에서 성당의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하던 날의 눈물, 꽃향기 가득했던 마지막 보금자리,
밤낮으로 기도해 주시고 돌봄을 베풀어 주신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님과 신부님들, 사모님들, 아타나시아 봉사자님과 교인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신 대주교님의 고요한 평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하나 소중했다. 대주교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은 단순히 기억만이 아니었다.
그분이 보여주신 신앙의 모습, 마지막까지 유지하신 품위와 사랑,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평화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다.
3주기를 맞은 지금,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진정한 이별은 없다는 것을.
사랑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는 것을.
대주교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사랑과 축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