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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미덕일까요, 아니면 단점일까요?

 

미덕일까요, 아니면 단점일까요?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목할 만할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욕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고 우리가 받는 박해를 참아내고 비방을 받을 때는 좋은 말로 대답해줍니다.”(고린토 전 4,12-13)

사도 바울로의 이 대조되는 세 가지 표현은 관용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문득 의문이 생깁니다 : 관용은 미덕일까, 나약한 성품일까? 사도 바울로는 다른 편지에서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필립비 4,5) 즉, 관용이 당신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관용을 심각한 단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관용은 무엇일까요? 미덕일까요, 아니면 단점일까요? 올바른 답은 어느 것일까요?

관용은 미덕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게 될 관용의 이유와 그 결과에 따라 다르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관용을 베푼다면 우리의 관용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미덕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관용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근원에서 유래되어 상대방을 너그럽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 쓰인다면 그것은 미덕이 됩니다.

상대방이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쳤을 때 용서와 함께하는 관용은 매우 큰 미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관용이 가져올 결과들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우리가 순진하다고 생각해서 우리의 관대함을 이용하게 된다면 그는 무례한 사람이 될 것인데, 그러면 결국 불행하게도 우리의 관용에 비록 좋은 의도가 있었더라도 미덕은 아니게 됩니다.

우리의 관용으로 상대방이 잘못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의 관용은 칭찬받을 만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보여야 합니다만, 반드시 분별력 있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나 선생님이 관용을 현명하게 베푼다면 그들은 좋은 부모이고 좋은 선생님인데, 아이들은 나중에 자라서 그들에게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무분별하게 쓴다면 관용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큰 해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