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놓고 그분들의 사진 앞에서 절을 올리는 것이 정교회에서는 허용되나요?
돌아가신 분들의 무덤 앞에 음식을 차려놓는 풍습은 많은 민족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아주 오래된 풍습입니다. 심지어는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조상들의 무덤에 음식을 바쳤고 그 시대의 예언자들은 이런 행위를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금지하기는 커녕 "의인들의 무덤에는 빵을 풍성하게 내놓되 …"(토비트 4,17)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이런 행위를 적극 권장했습니다. 또한 마카베오 하권 12장 43~45절을 보면 마카베오라고 불리는 유다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믿고 있었기에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려달라고 은 이천 드라크마를 예루살렘에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교회는 선교한 여러 나라에서 이런 풍습이 있는 것을 보고 그 풍습을 없애지 않고 여기에 영적인 내용을 첨가했습니다. 죽은 자들의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기도문을 만들고 자선과 사랑의 행위를 이런 풍습에 접목시켰습니다.
그래서 정교회 교인들은 돌아가신 분을 기념하여 음식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하거나, 죽은 자에 속한 물건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교회나 자선 단체에 기증하기도 합니다. 특히 기일에는 밀이나 쌀로 만든 꼴리바를 만들어 교회에 가져와 나눠 먹습니다. 밀이나 쌀을 땅에 뿌리면 싹이 돋아나고 열매를 맺듯이 무덤에 묻힌 사람들도 부활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추석 명절에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음식을 차리는 것은 허용되지만 벽에 지방(紙榜)을 붙이는 일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감사와 공경의 표시라면 그분들에게 큰절을 하는 것도 허용됩니다. 설날이나 축일 때 살아계신 어른들에게 큰절을 올리는 것처럼,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이 살아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그분들을 추억하면서 절을 하는 것은 정교회의 믿음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조상들을 우상 숭배하듯 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진이 우리가 사랑했던 분들을 추억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라면 사진을 놓는 것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진 속에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스며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