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성 대 바실리오스 케사리아의 대주교
성인은 정교회의 세 분 대주교 성인 (성 대 바실리오스, 성 그레고리오스 신학자, 성 요한 크리소스톰: 1월 30일) 가운데 한 분이다.
약 330년경 지금의 터키 곧, 예전의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 지역 케사리아에서 사제인 아버지 바실리오스와 덕성을 갖춘 어머니 에밀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부유했으며, 부모는 모두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성인은 케사리아의 가장 우수한 학교에서 공부한 뒤, 콘스탄티노플과 아테네에서도 수학했다. 특히 당시의 아테네는 가장 우수한 학자들과 교사들이 모이는 학문의 중심지였고, 그곳에서 평생의 친구인 성 그레고리오스 신학자와 교분을 나눴다. 유학 중에도 성인은 고기나 생선은 물론이고 포도주도 입에 대지 않는 금욕생활을 하였다.
케사리아의 에브세비오스 주교가 요청함에 따라 당시의 이단들을 대항하기 위해 매진했고, 370년경 에브세비오스 주교가 안식하자 그 주교직을 이어받아 379년에 49세로 안식하기까지 봉사하였다.
성인은 높은 지식을 지녔으며, 고결한 성품과 뛰어난 저술로도 유명하였다. 또한 엄격한 금욕생활과 모범적인 검소한 삶은 생전에도 성인처럼 존경을 받게 하였다. 병약한 신체조건을 지녔음에도 이단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투쟁가로서의 면모를 보였고, 조직적인 두뇌로 정교회 수도원 전통의 기초를 놓아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교구에 세웠던 다양하고 광범위한 자선기관들은 그리스도교 자선단체의 모범이 되었다.
선한 목자였던 성인이 당시의 왕이며 우상숭배자인 율리아노스의 위협으로부터 케사리아의 신자들을 지켜낸 일화는 유명하다. 아테네에서 성인과 함께 공부했던 율리아노스 왕은 페르시아를 치러 가는 길에 케사리아 지방을 지나게 되었고, 성인은 평소에 먹던 보리빵 세 개를 만들어 교인들과 함께 왕에게 선물로 가지고 갔다. 당시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고 왕도 마침 빵을 청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섬기는 신들을 섬기지 않는 데 화가 난 왕은 페르시아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도시를 불살라 버리겠노라고 고함을 지르고는 떠나버렸다. 그러나 이후 그 왕이 다시 돌아올 무렵 여자와 아이들까지 삼 일간 금식을 하고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성모 성당에 모두 모여 기도를 하자 성인의 눈에는 한 환상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율리아노스 왕이 죽임을 당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런 사실을 확인한 뒤 교인들은 포악한 왕을 달래기 위해 바치려고 모아두었던 금, 은, 보화들 가운데 삼분의 일만을 찾아가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느님께 바치겠노라고 하였다. 그래서 성인은 교인들의 그 갸륵한 뜻을 받아들여 그 돈과 보석들로 병원, 양로원, 고아원, 학교, 나병환자를 위한 병원, 가난한 사람과 여행자들을 위한 집들을 짓게 하였다. 이것들이 나중에 이른바 ‘바실리아드’(Basiliad)라고 알려진 자선시설들이다.
한편 성인의 부모를 포함하여 형제와 자매등 열두명의 가족 중에서 여섯 명이 성인품에 올랐다. 곧, 어머니인 성 에밀리아, 성 대 바실리오스, 수도성인이며 기적을 베푸는 성 나프크라티오스, 니사의 주교 성 그레고리오스, 세바스티아의 주교 성 베드로, 성 마크리나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