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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신앙 탐구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앙생활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앙생활


악성 빈혈이란 외형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서서히 죽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다.

이런 악성 빈혈과 같은 증세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주 나타난다. 그들은 영적인 빈혈을 앓고 있어서 수혈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사람의 영혼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흘려진 피' 즉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피'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수혈은 성찬예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성찬식에서는 고귀하고 지극히 거룩하며 깨끗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성혈이 죄 많은 우리의 핏속에 주입된다. 보잘것없는 우리의 혈관 속으로 주님의 피가 흐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골고타의 희생이 반복되는 것으로, 거룩한 제단은 골고타가 되며 그곳의 바위를 적셨던 바로 그 고귀한 피가 우리 교회의 희생 제단을 적시게 된다. 그리고 성찬식 때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믿음과 사랑으로 가까이 올지어다."라고 사제의 입을 통하여 영적 빈혈에 시달리는 신자들에게 가까이 다가와 구원의 수혈을 받으라고 부르신다.

 

구원의 수혈로 영적 빈혈을 다스려야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사람들의 영혼이 얼마나 쉽게 병이 들고 또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아셨다. 더불어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영생을 무척이나 갈망하고 있음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사랑의 주님께서는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요한 6,53)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보잘것없는 우리의 부족한 머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 사랑의 성사를 주님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행하셨으며, 또한 "나를 기억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루가 22,19)라는 마지막 부탁을 남기셨다.

이렇게 최후의 만찬을 통하여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셨던 그 만찬의 신비가 우리가 항상 올리는 성찬예배이며, 따라서 이것은 '최후의 만찬'의 연속인 것이다.

'성찬의 베품'은 성찬예배의 중심을 이루며,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축성하신 그 주님의 성체성혈을 우리가 영하는 것이다.

 

이제는 성찬의 의미를 알아야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너희가 더 나은 생활, 더 영적인 생활을 살고 싶다면 가까이 와서 내가 주는 생명의 빵을 자주 먹으라"고 하셨다.

또한 "이 성잔에서 나의 피를 마시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의 죽음이 죽음을 물리쳤으므로 너희는 아무것도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요한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56)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를 계속해서 거룩한 감사의 성사로 초대하고 계심을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성찬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하셨으며 우리가 자주 성찬에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셨으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성서를 읽어보았지만 무엇 때문에 성찬식에 참여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불을 토하는 사자처럼 힘을 가지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성찬에로 부르신다. 그러나 우리는 깨끗한 영혼과 더러움이 말끔히 제거된 입술로 생명의 잔에 다가가야만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쉽게 죄에 빠지는 속성이 있음을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성찬에 참여할 때 입을 옷, 다시 말해 회개의 옷을 주셨으므로 이 옷을 입어야 생명의 잔에 가까이 갈 수가 있다. 고백성사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사랑의 표시이다.

신자가 성찬식을 통해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영적인 준비와 노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거룩한 교부들은 강조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성찬이 우리의 영혼에 유익한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양심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마치 불을 토하는 사자처럼 힘을 가지고 마귀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 했으며, 또 "죄인은 그 누구도 성체를 모셔서는 안 됩니다. 아니,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남아 있는 사람, 즉 고백 성사를 드리지 않고 회개를 하지 않음으로써 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감사성사에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참된 회개와 진실한 고백으로 미리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성체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의미이다.

 

손님이 주인을 모욕한다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신념, 즉 주님의 몸과 피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적 양식이며 따라서 수시로 성체성혈을 영하는 것은 사람에게 크나큰 이득을 가져온다는 이 신념은 그 후 계속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념이 되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렇게 말했다. "교회에 와서 성가와 기도에 참여하고 나서도 성체성혈을 모시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식사에 초대받은 손님이 주인집에 와서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먹을 준비를 다 하고서도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음으로써 주인을 모욕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오지 않은 게 나았을 것이다."

만약에 성체성혈을 모시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방치하는 게 아니라 성찬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앙생활이란

그리스도를 성찬을 통하여 우리가 마음에 모실 수 있다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승리할 수 있는, 어떤 어려움도 다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세로 영성체성혈을 할 수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큰 기쁨을 가지고 '주의 이름이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찬양되시리이다.'라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앙생활이란 성찬예배에 참여하고 성체성혈을 영함으로서 시작된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고, 성서를 읽거나 묵상하지 못하는 것은, 또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 없이 불구의 생활에 불과하다.

이것은 영적인 힘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는 결국 영적 양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결과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주님의 성체에 가까이 갈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모두 맑은 정신과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주님의 끝없는 사랑을 실제로 체험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감사성사에 대한 안내서'에서 일부를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