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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성인의 가르침

사로프의 성 세라핌 수도자의 가르침

평화를 주고 마음을 이롭게 하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사로프의 성 세라핌 수도자의 가르침


수도 성인이었던 사로프의 성 세라핌은 19세기에 생존하셨던 분으로서 전 세계 정교인의 사랑을 받으시는 성인이시다. 우리 한국 정교회는 한국 선교가 시작될 무렵, 선교사들이 가져온 성인의 성상으로 인해 무척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성상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왕비가 하사한 것으로, 지금은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 안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 성상은 성인의 성해가 이장될 때, 그 성해 위에서 축복을 받은 것이다.

 

1. 하느님에 관하여

하느님은 인간의 내면 즉 마음을 태우고 따뜻하게 하는 불이십니다. 사탄에게서 온 냉정함이 우리 마음을 채우고 있다고 느낄 때(사탄의 본질은 냉정함에 있습니다), 주님을 부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오셔서 그분만이 아니라 우리 이웃을 위한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따뜻한 이 사랑이 나타나면, 마귀의 냉정함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질문을 받고 성 교부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나 그분이 사시는 곳이 어디인 가에 대해 호기심을 갖지 마십시오.” 

하느님이 계시는 곳에는 유혹이 없습니다. 평화를 주고 마음을 이롭게 하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끊임없이 겸손하게 합니다.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주님을 욕되게 하고 언짢게 하더라도 그분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얼마나 크신 인내심으로 참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벌을 내리실 때도 얼마나 큰 사랑으로 우리를 책망하십니까!

우리가 바닷물보다 더 많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더라도, 주님께 감사드리기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님은 우리 영혼의 불결함을 씻으시고 순결케 하시며, 그리고 우리를 부활시키시기 위해 그분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성사로 인한 은총은 그처럼 위대합니다. 죄의 무게와 관계없이, 각 사람을 깨끗하게 하며, 그를 재생시킬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 이삭은 하느님의 정의를 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정의는 우리가 하는 일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주님을 의로우신 분이라고 칭하였습니다만, 그분의 성자는 선하고 자애로우신 분으로 증거 하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죄인들이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정의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까?

자기의 힘을 다해 자신을 순결하게 지키며,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은 하느님의 눈앞에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성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 그분의 얼굴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본분에 합당하게 하느님을 명상하는 주님의 의인들은 이 지상의 삶에서부터 거울을 보듯이 하느님의 형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것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그분의 사랑이 당신을 깨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볼 수 없다면, 그분을 사랑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앎으로써 그분을 명상할 수가 있습니다. 

배가 부른 사람은 누구라도, 하느님의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가득 찬 위장을 통해서는 하느님의 신비가 비치지 않는 것입니다.

 

2. 믿음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을 믿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브리 11,6) 

성 안티호스의 가르침에 따르면, 믿음으로 하느님과 우리와의 결합이 시작됩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성전 기초의 돌 한 개와 맞먹습니다.

그는 성부이신 하느님의 집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보호하심으로 높이 올려졌습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보서 2,26). 믿음으로 인한 행동들이란 사랑, 평화, 인내, 자비, 겸손,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 그리고 성령 안에서의 삶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만이 오직 진정한 것입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진실로 믿는다면, 그는 그것을 실천에 옮깁니다.

만약 우리가 교부들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믿음이 없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는 단호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들을 모방하며 따르기로 단단히 작정하였다면, 그분들처럼 살아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따르는 신자들에게 주시는 그분의 은총은 항상 일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히브리서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