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가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 많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데살로니카 후 3,2)라고 사도 바울로도 말했습니다. 물론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사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굳건하고 열정적이고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나요? 성서와 우리 교회의 교부들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람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먼저 올바른 믿음의 진리를 알기 위해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세례 받기 전에 오랜 시간 여유를 두고 교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로마 10,14)라고 사도 바울로도 자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 마르코 수사는 "누구든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올바로 믿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하느님의 뜻에 대해 알고 난 후에야 믿음을 가지게 됨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기 위해, 1~2년 동안 교리를 배운 것으로 만족하고 더는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교회에서 축일표에 명시하고 있는 매일의 복음 말씀과 사도경 말씀을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성찬예배에서의 설교 말씀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하고, 성서 공부도 주의 깊게 임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교리 공부나 여타 성서 공부 모임에 더 열심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시기에 신앙에 대해 충분히 배우지 못한다면, 그들은 나중에 사회의 많은 유혹에 흔들려 믿음을 간직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제야 부모들은 하느님을 따르지 않는 자녀들을 바라보며 괴로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대해 알 수 있는 다른 좋은 방법은 정교회의 책을 읽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한국어로 번역이 많이 안 되어 있지만, 지금 출판된 책들이라도 어른, 아이 구분 없이 관심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또 믿음을 잘 간직하고 더욱더 굳세게 하려면 우리의 욕망과 매일매일 싸워야 합니다. 거룩한 교부들은 성령의 빛으로 말씀하기를 만약에 우리 안에 욕망이 지배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약해지거나,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욕망은 어떤 것인가요? 이것은 우리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육신의 욕망입니다. 이 욕망은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더 비싼 음식을 먹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고 희귀한 술을 마시며 즐길까 하는 육신의 쾌락에만 관심을 두게 합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오늘 저녁에 누구하고 술을 마시며 즐길까 궁리하다 일이 마치자마자 총알처럼 술집으로 달려가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로께서 통곡하면서 욕망에 지배당한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쓰셨습니다. "그들의 최후는 멸망뿐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삼고 자기네 수치를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며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는 자들입니다."(필립비 3,19) 육체의 욕정에 대하여 사도 바울로께서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1,24~27) 언급하고 계시며 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에 관해 얘기하는 것 자체도 부끄러운 것입니다."(에페소 6,12) "그런 모양으로 사는 자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법을 잘 알면서도 그들은 자기들만 그런 짓들을 행하는 게 아니라 그런 짓들을 행하는 남들을 두둔하기까지 합니다."(로마 1,32)
마음속에 육체의 욕정이 가득한데 어떻게 믿음이 자리 잡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정신적인 욕망도 육체적인 욕정과 같이 믿음을 약하게 합니다. 이러한 욕망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분노를 낳아 험한 말을 하게 하고 폭력을 쓰게 만들며, 심지어는 사람을 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욕망은 모든 점에서 사랑과 상반되며, 진정한 믿음과 정신적인 평화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나약함인 이기심, 자존심, 자만심, 환상들 또한 믿음을 약하게 합니다. 이런 마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좋은 평판을 받고자 하지만 그만큼 올바르게 살지도 않을뿐더러, 결코 참된 경건과 자비를 갖춘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주님께서 질책하셨던 (마태오 23,27)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겉만 모양만 경건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됩니다.
정신과 영혼, 육체를 깨끗하게 하여 믿음의 꽃이 피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욕망과의 투쟁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마태오 6,30)과 같은 짧은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는 믿음을 아주 오래되고 아주 깊고 넓게 뿌리를 내려 어떠한 바람에도 뽑히지 않는 상수리나무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수리나무가 자라고 뿌리를 깊게 내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렇듯 우리 안에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 성인은 믿음의 기초를 완전히 흡수하고, 믿음의 교리와 진리를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기 위해, 매일매일 우리의 온 생애를 바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은 믿음으로 하느님께 못 박힌 것처럼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영혼은 어느 누가 흔들어도 그 믿음을 지켜낼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힘들기만 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까르파티오스의 성 요한 수도 성인은 성서의 영원한 진리를 깊이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쁨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최종 목적, 우리 삶의 궁극 목적에 대해 사도 바울로께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침내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에페소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