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승천이 주는 의미
(빵그라띠오스 대신부)
주님의 축일 중에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하는 축일도 있다. 그날이 지난주 목요일인데 이날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이 되는 날이다.
성서에는 주님께서 죄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낙원에 다시 들게 하기 위해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셔서 다음 가르치신 말씀들과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인간 시조가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면서부터 인간은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하느님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승천은 우리의 구원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선 여기서 주님의 승천에 대해 성서에서는 어떻게 언급되어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곤 하셨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시며 축복하여 주셨다. 이렇게 하신 것도 얼마 안 있다가 제자들에게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는 과업을 부과하기 위한 계획 중의 일환이었다. (마르코 16,9~20 참조)
그러다가 40일째 되던 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 근처의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거시서 제자들은 어느 순간 그들의 스승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봤다. 그들은 그들 곁을 떠나 하늘로 오르시는 주님을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보고 있었다.
지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천상에서는 다른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천사들은 의아심과 기쁨으로 자기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시는 새로운 방문자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처음 보는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때까지는 하느님과 자기들 천사들만을 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들은 인간 시조가 낙원에서 추방한 후에는 거기에서 사람들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신가? 그리고 왜 붉은 옷을 입으셨는가?” (이사야 63,1~4 참조)
그러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느님으로서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낙원을 결코 떠나신 적이 없다. 그런데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로의 말씀처럼 두 번째의 아담이 되셨다(고린도 전 15,45). 그리하여 이제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다음 그 승리와 함께 낙원을 인간에게 가져다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인격과 업적으로 하늘나라의 길을 여시고 사람들을 하늘로 오르게 하셨으며 하느님 옥좌 옆에 앉게 하셨다.
그때까지 막혀 있던 하늘나라의 길을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셨음으로 인간이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로 되돌아갈 가능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가능성으로 사람은 하늘나라의 초대를 받고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 가능성을 가치 있게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그 앞에 열린 길이 있다. 그 길이 비단 오르막길이고 힘든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혹자는 사람이 마음대로 그 길을 선택할 수 있고 그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와 사랑을 주셨다. 하느님을 사랑하며 자신의 자유를 유익하게 행사하고 하느님의 길을 어느 다른 길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면 되는 것이다. 사도들과 순교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길을 걸은 많은 성인처럼 우리도 하면 되는 것이다. 요는 그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교회는 복음의 가르침과 성사의 은혜로 그 길을 제시해 주고 그 능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에게도 강요하시지 않는다. 그저 그 길을 열어 놓고 부르실 뿐이다. 원하는 사람을 먼저 나를 따라 십자가를 진 다음, 부활하고 승천하여 영원한 영광을 누리라고 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