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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자선

"우리가 보여주는 자선의 중요함은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깊이에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과 진정한 사랑으로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자선

(소티리오스 대주교)


우리 정교회는 성찬예배와 각종 예식에서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 '자비'와 관련된 표현을 많이 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하느님, 선한 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지신 분이여, 내 죄를 없애 주소서", "주는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느님이시니...", “이는 다 주님 외아들의 은혜와 자비하심으로 인함이니..." 이처럼 우리가 함께 드리는 공동 예배에서 이런 표현을 자주 듣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을 이런 분이라고 자주 언급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에페소 2,4) "주께서는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며..."(시편 103,8)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다시 낳아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도 않는 분깃을 하늘에 마련해 두셨습니다"(베드로 전 1,3~4)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자비와 동정심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용기를 내어 그분께 우리의 모든 문제와 필요를 요청해도 좋을 것 같은 신뢰를 하게 합니다. 그래서 공동 예배를 통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청원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의 청원에 적절한 방법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한편으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처럼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웃에게 자애롭고 자비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구복단 중에서 말씀하시기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오 5,7)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스러운 영감을 받은 사도 바울로는 권고하기를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성도들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골로사이 3,1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한적한 곳에 모여든 군중을 보시고 측은한 생각이 드셨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 많은 사람들이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나와 함께 지내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으니 참 보기에 안되었구나. 가다가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 보내서야 되겠느냐?'하고 말씀하셨다."(마태오 15,32)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수천 명에게 음식을 나누어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마음 깊은 사랑을 가지고 진실한 자비를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거룩한 복음저자들은 예수님의 자비에 대해 자주 언급했습니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거기 모여든 많은 군중을 보시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마태오 14,14) 주님께서는 나인 지역 성밖에서 죽은 자식의 상여를 뒤따르는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그녀의 아이를 살려주시기도 하셨습니다.(루가 7,13~15 참조)

물론 우리는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기적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처럼 똑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여주는 자선의 중요함은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깊이에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과 진정한 사랑으로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헌금함 맞은편에 앉아서 보고 계실 때 가난한 과부가 렙톤 두 개를 예루살렘의 성전 헌금함에 넣은 이야기를 주목해야 합니다.(마르코 12,42 참조)  

 

이런 감명 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겨울에 한 걸인이 거리 구석에 앉아 손을 내밀며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던 한 사람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 걸인에게 줄 돈이 없었습니다. 그는 차가운 걸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드릴 돈은 없지만,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거지는 이 말을 듣고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당신 손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군요.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에 자애심이 있다면 이런 단순한 방법으로도 이렇게 상대방에게 훈훈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도 바울로는 우리의 자선이 가치가 있도록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강조합니다. "각각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내야지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 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고린토 후 9,7)

이 부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 이유는 의미 없이 도와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통이 큰 자선을 베풀고도 그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잘못된 마음 자세로 즉, 사랑으로 자선을 하지 않고 과시를 하기 위해서 자선을 베풀면 혹은 자선을 하고 나서 아까워하거나 자신은 부족하게 되었다고 불평을 하고 속상해한다면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움을 주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가 더욱더 중요하기 때문에 자선할 때에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모두 이미 알고 있지만 자주 잊어버리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기억합시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마태오 6,2) 또한 사람으로부터 칭찬과 영예를 받기 위해서 자선을 한다면 사람이 해 주는 보상을 받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보상을 기다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태오 6,1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도 바울로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권면했듯이 우리가 마음에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성도들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골로사이 3,12)를 유지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자비와 풍성한 축복으로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도와주고 지원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주님을 닮도록 노력합시다.

 

사도행전 10,4에 보면 "그는 천사를 바라보자 겁에 질려서 '주님, 무슨 일이십니까?'하고 물었다. 천사는 '하느님께서 너의 기도와 자선을 받아들이시고 너를 기억하고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천사가 케사리아의 고르넬리오스 백인대장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이 내용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자선이라는 날개가 없다면 기도는 하늘나라로 오르지 못합니다. 자선은 사람을 하늘로 들어 올리게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