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교회 신앙/24인 수호성인

성 니콜라스 미라의 주교 (축일 12월 6일)

 

오래 기다려 얻은 아이

성인은 3세기 말에 소아시아 남서쪽에 위치한 리끼아(Lycia: 까리아 남동쪽의 해안지대) 지역의 파타라란 곳에서 그리스도인이며 오래도록 자녀가 없던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덕을 사랑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열정을 간직하였던 성인께서는 경건하고 고요한 생활을 즐겼다. 신학교육을 받은 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삼촌인 대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된 성인은 수년 동안 철야 예배와 금식, 기도에 전념하는 생활을 하였다. 아버지가 죽은 후,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 후로 자선을 베푸는 일은 성인의 가장 큰 미덕이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기적을 베푸는 능력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미라(Myra)의 주교

성인이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온 직후 가까이에 있던 미라(Myra)란 도시의 지도자를 선출하게 되었는 데, 천사가 주교 회의에 알려 성인을 주교로 선출하였다. 4세기초 디오클레티안 황제와 막시미안 황제의 마지막 대박해 때(305년경), 성인은 감옥에 갇혀서도 당신의 양 떼들을 신앙에 굳건히 서도록 붙잡아 주었다. 콘스탄티노스 황제가 권좌에 오른 뒤, 성인은 우상을 타파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고,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제1차 세계 공의회에 참석하여 다른 교부들과 함께 이단자 아리우스의 주장을 논박하고 정교의 올바른 가르침을 확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성인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미라 도시에 불어닥친 흉년을 구제했으며, 콘스탄티노스 황제의 꿈에 나타나서는 모반죄(謀叛罪)로 부당하게 기소된 세 명의 로마 군인을 변호하여 살려내기도 하였다. 살아난 세 군인은 성인의 도우심에 감사한 나머지 모두 수도자가 되었다. 

사랑이 많은 ‘좋은 목자’

살아있을 때 뿐만 아니라 안식한 뒤에도 성인은 곤경에 처한 배와 항해 중인 사람들을 기적적으로 도와주었다. 이로써 모든 항해하는 이들의 수호자가 되었다. 오랫동안 그는 그리스도의 현존으로서 교인들에게 ‘좋은 목자’가 되었다. 성인의 깊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던 어떤 불행도, 성인이 바로잡지 못한 어떤 부정의(不正義)도, 성인이 제휴하지 않은 어떤 불화도 없었다. 어느 곳에 나타나든지 빛나는 얼굴과 말할 수 없이 그윽한 평화의 기운에 주위 사람들은 매료되었다. 평화로이 안식한 뒤, 성인을 기념하여 미라 도시에 지어진 성당 안에 안치된 성인의 성해에 공경을 표하기 위해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성인은 게오르기오스 성인과 함께 서방과 동방 모두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 중 한 분이며, 성인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의 수는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은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별히 성인은 러시아에서는 수확한 곡물의 수호성인으로서, 그리고 서방에서는 모든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