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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24인 수호성인

5인 순교자들 (축일 12월 13일)

 

성 아브크센티오스, 에브게니오스, 마르다리오스, 에브스트라티오스, 오레스티스 순교자

그리스도인 귀족

디오클레티안 황제의 혹독한 박해기에 공포와 피의 통치는 로마제국의 가장 먼 구석까지 미쳤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배교(背敎)와 순교 사이에서 선택을 하여야만 했다. 당시 소아시아 동부에 있는 사탈라(Satala)라는 아르메니아인 도시에 에브스트라티오스라는 이름의 한 귀족이 살고 있었다. 그는 공작(公爵)의 지위에 해당하는 참사관(參事官)으로서 그 지역을 관할하는 상급(上級) 제국 서기였다. 숨겨진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침내 순교할 결심을 굳히게 된 성인께서는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결심을 알렸다. 다음날 그 지역의 통치자인 리시아스(Lysias)가 도시 한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 죄수들을 신문(訊問)할 때, 에브스트라티오스는 담대히 그 앞에 나서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였다. 성인은 곧 귀족임을 표시하는 의복과 허리띠를 박탈당한 뒤, 고문에 처해졌다. 그러나 그날 밤 성인의 상처는 말끔히 치유되었으며, 성인의 불변하는 믿음을 목격한 동료 시민 에브게니오스도 성인과 함께 신앙을 위해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성인들의 고난과 순교

다음날 일찍이 성인들을 포함하여 모든 그리스도인 죄수들은 맨발로 또는 쇠못이 박힌 신을 신은 채로 니꼬폴리스(Nicopolis)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으며, 이틀에 걸친 행진 끝에 마침내 에브스트라티오스 성인의 고향인 아라우라까(Arauraka)라는 마을에 도착하였다. 창문에 기대어 죄수들의 행렬을 바라보던 마르다리오스는 에브스트라티오스 성인이 모든 세속의 영광을 뒤로한 채 걷는 모습을 보고는 감동하여, 아내의 격려를 받음 다음 가족들을 믿을만한 친구에게 부탁한 뒤 순교의 행렬에 동참하였다. 니꼬폴리스에서 통치자 앞에 가장 먼전 불려 나온 이는 아브크센티오스 사제였으며, 그는 신문을 당한 뒤 숲으로 끌려가 목이 잘려 순교하였다.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곧 성인의 시신 중 머리 부분을 찾아내어 수풀 속에 숨겼다. 다음으로는 마르다리오스가 끌려 나왔으며, 그는 통치자의 물음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만 간결하게 대답하였다. 고문하는 사람들은 성인의 발목을 뚫어 끈을 꿴 다음 거꾸로 나무에 매달고는 죽도록 매질을 가하였다. 성인께서 안식하시기 전 말씀하신 아래의 기도문은 정교회의 예배(심야과, 제3시과, 석후대과)에서 날마다 낭독되고 있다. 

 

한 하느님이시고 한 권능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시여, 주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여, 성령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죄 지음을 주께서 아시나니 부당한 종인 나를 구하소서. 주는 영원히 축복을 받으시나이다. 아멘.

 

기적을 베푸시는 성인들

셋째로 불려나온 에브게니오스 성인 또한 혀와 손이 잘리고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몽둥이로 맞은 끝에 당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바치셨다. 그런 다음 통치자 리시아스는 군인들의 훈련을 지켜보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오레스티스라는 이름의 한 병사가 창을 던질 때, 그의 목에 걸린 금 십자가 목걸이가 통치자의 눈에 띄었다. 성인은 곧 통치자 앞으로 불려 나와 머뭇거림이 없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으며, 에브스트라티오스 성인과 함께 세바스티(Sebaste)의 통치자인 아그리꼴라(Agricola)에게로 보내졌는데, 이는 리시아스가 니꼬뽈리스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인들의 체포에 반발할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닷새 동안의 행진 뒤에 세바스티에 도착한 성인 가운데 먼저 오레스티스 성인이 불려 나와 고문을 당하였으며, 아직 젊은 탓에 조금 두려워하던 성인은 에브스트라티오스 성인의 격려에 힘입어 마지막까지 신앙을 지키고 순교하셨다. 홀로 감옥으로 되돌아온 에브스트라티오스 성인을 밤에 세바스티의 주교인 블라시오스(Blaise) 성인(2월 11일)께서 비밀리에 방문하여 용기를 북돋워 주고 마지막으로 성체와 성혈을 받게 하였다. 다음날 에브스트라티오스 성인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불가마를 향해 성호를 그은 다음 그 속으로 들어가 구약의 세 아이들(다니엘 3장 참조)처럼 감사의 찬양을 드리며 순교하셨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이 다섯 성인들은 당신들의 성해(聖骸)와 성화를 통하거나 때로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수많은 기적을 베푸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