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이란 무엇인가?
(빵그라띠오스 대신부)
'악하다' 또는 '나쁘다'라는 말은 우리들 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다. 이 단어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상태를 그렇게 판단하고 규정짓는다. 그런데 과연 이와 같은 악한(나쁜) 사람, 악한 사물, 악한 상태가 있는가? 여기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해 보기로 한다.
우선 결론부터 내린다면 '없다'가 맞는 대답이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실체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같이 매스컴 등에서 보고 듣는 살인, 강도, 전쟁, 불의 등은 모두 무엇인가?
물론 그런 끔찍하고 잔인한 범죄와 안타까운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 원인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악의 행위나 악의 상태 모두가 사람에게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가상해 보기로 하자. 어떤 포악한 사람의 난동으로 한 사람은 죽고 다른 한 사람은 죽지는 않았으나 가족이 희생되고 집이 불타 없어진 사건이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들 두 사람에게 즉, 죽은 사람과 가족이 희생된 사람에게 칼 하나씩을 손에 쥐여 주었다고 하자, 그때 범인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고 하면 죽은 사람이 일어나 그에게 보복할 수 있겠는가? 물론 못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보복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그 사람 마음의 결정이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마음의 의지(意志)이다.
이것이 바로 악의 원인인 것이다. 사람의 의지가 악한 행위를 하도록 충동하는 것이다.
성 대 바실리오스, 성 요한 크리소스톰, 성 그레고리오스 그외의 교부들은 “어둠이 빛이 없을 때 생기는 것과 같이, 악(惡)은 선(善)의 결핍에서 온다”라고 가르친다.
악은 실체(實體)도 없고, 존재(存在)하지도 않는다. 만일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왔었어야 한다. 그런데 하느님은 존재하는 것들만 창조하셨고, 창조된 것들은 대단히 좋았다고 성서는 확인해 주고 있다. 천지창조에서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기 1,31)라고 하였다.
사람도 선하게(좋게)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善)이시고 빛이신 하느님 가까이에서 하느님과 교제하면 선하다(참 좋다). 그러나 하느님을 멀리하면 악해지고 어둠을 좋아하며 악행을 범하게 된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봐 빛을 멀리한다”(요한 3,20)라고 한다.
악의 원인은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악의 실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악은 사람이 하느님을 멀리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