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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불신앙

 

불신앙

(소티리오스 대주교)


부활절이 지난 다음 주일의 복음서와 이 날의 성가들에서는 다른 열 명의 사도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부활에 관한 사실을 믿지 않은 토마스 사도의 불신앙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른 제자들도 몰약을 가진 여인들로부터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믿지 않았다고 거룩한 복음서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루가24,11.21.37).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서 제자들이 처음에는 믿지 않고 의심을 했다는 기록을 대했을 때, 우리는 이 거룩한 제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감정이 생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그들의 입장에 있었다면 우리는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영혼의 깊은 곳을 들여다봅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각자는 부활하신 주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솔직하게 고민해 봅시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시고 온갖 것을 다 채워주신다" 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항상 계시다는 내용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성서를 굳게 믿습니다.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깔고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 거기에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시편139,8-9)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주님께서는 우리 앞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행실을 보고 계시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듣고 계시시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까지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정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론적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도록 합시다. 나는 정말로 이러한 것을 진리로 믿고 있는가? 우리가 유혹에 빠져서 육신과 영혼을 더럽히는 행위를 하게 될 때, 하느님께서 나의 앞에 계시고 내가 하는 일을 보고 계시다는 것이 정말로 믿어지는 걸까? 아니면 내 동료에게 거짓말하고, 모욕적인 말을 할 때 진리를 아시는 하느님께서 내 말을 들으신다는 느낌이 들기나 하는 걸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누가 감히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르겠습니까?

더군다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어떻게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구약성서에서 요셉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젊은 요셉이 경호대장인 이집트사람 보디발의 종으로 팔려갔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꾀어서 죄를 지으려고 했을 때, 요셉은 곧바로 소리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짓을 제가 어떻게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느님께 죄가 됩니다.”(창세기39,7-9참조) 그러므로 모든 죄악 된 행위를 하는 원인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앞에 계신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눈을 감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마태오5,44) 그리고 원수에게 관용과 사랑을 베풀면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마태오 5, 45)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를 비난, 질투, 시기하고 더더욱 불의하고 적대시하는, 우리를 해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랑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마태오5,43)그리고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마태오5,38 참조)라는 낡은 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해친 자들에게 복수하지 말라고 하셨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로마12,19).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우리를 위한 변호를 의롭고 전능하신 주님께 맡기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우리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복수하려고 심지어 그들을 죽여서라도 복수하려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굶주린 사람과 노숙자와 병든 사람들을 도와줄 때 주님께서는 그 선행을 직접 제물로서 받아들이신다고 우리를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최후의 심판 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어 주님 왕국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온갖 좋은 것을 우리에게 상으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앞에 살아 가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굶주리고 버려진 사람이 서 있으면,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그리스도께 하는 행동이라고 믿고 계십니까? 아니면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그들을 회피하십니까?

 

형제 여러분, 위에서 한 이 질문에 대해 각 사람은 정직하게 스스로에게 내리는 대답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이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자신의 신앙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께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살아 움직이며 뜨겁습니까? 그렇다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항상 뜨거운 신앙을 유지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아니면 당신의 신앙은 차갑고 행실이 없는 말뿐입니까? 이러한 상태라면 스스로 걱정하십시오. 예수님의 형제이신 성 야고보 사도는 행실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야고보2, 20 참조)

만일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한 믿음이라면, 성령께서 라오디게이아 교회에 하신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버리겠다. "(요한묵시록 3, 16).

 

방금 언급한 두려운 말씀에 우리 모두는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미지근한 상태이거나 믿음이 약한 상태가 위험한 것은,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고 속아넘어가는 이 상태가 짧든지 길든지 위험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불신앙에 빠졌을 때 악마의 영에 시달렸던 아이의 아버지처럼 무릎을 꿇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마르코 9, 24 참조)라고 말해야 하겠습다. 그리고 사도들이 주님께 요청한 것처럼 우리도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 (루가17,5)라고 말합시다. 베드로가 의심을 품고 물에 빠졌을 때 주님께서 베드로의 손을 잡고 구해주신 것을 분명히 믿고, 우리는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주님, 살려주십시오! " (마태오 14,30-31)라고 소리친다면,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구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