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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2월 11일] 성 테오도라 왕비수녀

Ἡ Ἁγία Θεοδώρα ἡ Βασίλισσα

 

성 테오도라 왕비수녀(2월 11일)


광포(狂暴)와 혼돈의 시대

성인은 콘스탄티노플의 명망(名望)과 지체가 높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성인의 집안사람 중 어떤 이는 공직의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용모와 지성을 겸비하였던 성인은 또한 경건하고 굳센 정교 신앙을 어머니로부터 전해 받았다. 830년 테오필로스 황제의 황후로 선택되자, 성인은 아내이며 동시에 황후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테오필로스 황제가 전례 없는 잔인함으로 거룩한 성화(이콘 icon)에 대해 박해를 가하자 성인은 부드러움과 인내하는 정신으로 황제의 노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붙잡혀 매 맞고 고문을 당한 채 추방되는 정교 신앙의 고백자들(곧, 성상 공경에 대한 정교회의 가르침을 지킨 사람들)을 돕고 지원하였다. 그리고 참된 신앙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감과 동시에 자신의 침실에 성화를 간직하고서 남몰래 공경하였다. 

 

올바른 신앙의 승리

그로부터 십 이년 뒤 테오필로스 황제는 심각한 이질(痢疾)에 걸렸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괴로워하는 남편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던 성인은 감추어 두었던 성모님 성화를 가져와 남편의 얼굴에 대었다. 잠깐 정신이 돌아온 황제는 성화에 입을 맞추고 나서 숨을 거두었다. 당시 왕위의 계승권자인 미하일 3세는 이제 겨우 네 살의 어린아이였으므로 성인이 섭정(攝政)을 맡게 되었다. 성인은 곧바로 성화를 복원시키고 추방된 정교 신앙의 고백자들을 되돌아오게 하였다. 843년 이단적인 총대주교가 물러나고 성 메토디오스(6월 14일)가 총대주교좌에 올랐다. 같은 해 사순절의 첫 주일, 제국의 각처에서 모여든 정교 신앙의 고백자들은 제7차 세계 공의회(787년)의 결정을 재확인하고 이단자들을 정죄하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룩한 성화에 대한 공경을 공식적으로 회복하였다. 

 

소멸하지 않는 축복의 샘

교회에 평화가 찾아오자 성인은 온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어린 황제를 꾀어 성인의 섭정을 물리치게 한 남동생의 책략으로 말미암아 성인과 딸들은 수녀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858년) 그로부터 성인은 기도와 금식 등 영적인 일에 몰두하며 살다가 867년 2월 11일 평화로이 안식하셨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1453년) 성인의 성해는 스피리돈 성인의 성해와 함께 코르푸(Corfu)섬으로 옮겨졌고,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보존되어 오늘날까지 그곳 대성당에 모셔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