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다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소티리오스 대주교)
날마다 조과에서 성인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죽음도 불사한 채 덕에 전념하고 몰두한 것, 성인들이 기도하여 기적이 일어난 것, 그리고 어려운 수련(어느 경우엔 기둥 위에서, 어느 경우엔 사막에서)을 과감하게 했다는 기록을 읽으면서 우리 많은 신자는 성인이 되신 분들은 우리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인상을 가지기 쉽습니다. 용기와 희망을 품고 맹수들과 맞닥뜨리는 불굴의 용기를 가졌던 성인들이나, 또는 매우 어려운 시련과 슬픔을 겪을 때조차 영혼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인내심을 가졌던 성인들은, 이 사회에 사는 우리처럼 생활하신 분들이 아니라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수도원이나 은둔처에 묻혀서 살았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제한된 사람들만 성인이 될 운명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하게 되어라.”(I베드로 1,16)고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고 계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성인이 될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거룩함은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거룩함은 자연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어떤 영적 투사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더욱이 몇몇 성인들은 우리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살기도 했습니다. 병자들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고생에 찌든 사람들이었고, 피고인들이었고, 중상모략을 당한 사람들이었고, 추방당한 사람들이었고, 부당한 대우를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세례받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거룩한 교회의 삶에 참여하면서 거룩함을 향한 길에 들어섰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이 길 위에서 행진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찬예배에서 주님께 "우리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나 당신을 찬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거룩함을 주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성인에 관한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교인 각자는 어떤 사회적 계급에 속해있었던지, 아무리 어떤 큰 죄를 지었든지 간에 진정으로 원한다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부도덕한 사람들이나 범죄자들이나 강도들이 진정으로 회개해서 정결하게 된 예는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 모든 이들을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거룩함이란 무엇입니까? 성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 성인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과 소통하기를 갈망하면서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기꺼이, 유쾌하게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며, 끝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같은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을 넘어서려고 분투하는 사람입니다.
- 동시에 성인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형상으로 사랑하고, 모든 길을 통해서 실제로 그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성인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어받아 축복을 행하시는 성령에 의해 그의 삶이 숨을 쉬게 됩니다.
- 성인은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소리 없이 사는 삶을 사랑합니다. 성인은 교만, 야망, 이기주의적인 생각과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멀리합니다.
- 성인은 계속해서 회개하면서 살며, 사도 바울로처럼 자신을 죄인 중에 첫 번째 죄인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 성인은 인내를 가지고 병이나, 중상모략이나, 부당함이나, 추방 그리고 결핍에 대처합니다. 왜냐하면 자애로우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해서 자기 삶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 더욱이 이례적으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적인 어떤 이유에 의해 기본적인 영적인 양식인 성찬예배를 보지 못하고 성체성혈을 모시지 못하게 되더라도 슬픔, 좌절,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다시 신뢰하고 자비로움 그 자체이신 주님께 가까이 오는데, 주님께서는 그분이 알고 계신 방법을 가지시고 성인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에 해당하는 특별한 예로 미팀나의 성 테오크티스티를 들 수 있습니다.
테오크티스티 성인은 1200년 전쯤에 사셨습니다. 20세에 그리스의 레스보스섬의 미팀나 지역 밖에 있는 수도원에서 수녀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에게해와 지중해에서 해적들이 난무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섬들은 해적들의 습격에 의해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해적들은 미팀나 지역을 침입해서 포로를 잡아들였는데, 그 포로들 속에 테오크티스티 수녀도 있었습니다. 포로들을 잡아들인 이유는 이집트의 노예시장에 포로들을 노예로 팔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적들의 배가 그리스의 파로스 섬에 도착했을 때, 그 당시 그 섬은 무인도였는데, 테오크티스티 수녀는 성모님께 기도한 후 해적들의 눈길로부터 멀어져 숲속으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해적들은 떠나갔고, 수녀는 35년간 그 무인도에서 집도 없이 살았는데, 파로스의 역사적인 ‘에카톤다필리아니 성당’이 수녀가 피신하여 혼자 살았던 곳입니다. 이 성당은 오늘날에도 남아있습니다. 수녀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우리는 그 생활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장 크게 결핍되었던 것은 성찬예배와 성체성혈 성사였습니다. 수녀의 생애의 마지막에서야 거룩한 선처가 이루어졌습니다. 수녀의 인생이 끝날 때,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전에, 단 한 번 성체성혈을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결핍이 그녀가 거룩함에 도달하여 성인으로 받아들이어지는 데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교 정교인에게 성찬예배와 성체성혈을 모시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최근에 수백만의 정교인이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성체성혈성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테오크티스티 성인도 이러한 결핍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수녀로서 35년간 성체성혈을 모시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그분은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삶의 마지막까지 그리스도를 동반자로 삼아 살기로 결심한다면, 그 어떤 외적인 영향력도 거룩함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대 바실리오스 성인께서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설교를 마칩니다. “축복이라는 것은 해마다 계속해서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마련하고 추구하면서, 거룩한 하느님께 우리 자신 전체를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