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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뜻

(소티리오스 대주교)


교회의 예식에서 하느님께 하는 간구하는 것 중에 하나는 그분의 '뜻(δικαιώματα)'을 우리에게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뜻'이라는 이 용어를 우리는 애초에 구약과 신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루가복음(1,6)의 처음에 “이 부부는(즈가리아와 엘리사벳) 다 같이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주님의 뜻, δικαιώματα του Κυρίου)을 어김없이 지키며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다.”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계명과 규율'에 해당하는 단어가 주님의 '뜻'을 가리킵니다.

 

정교회는 성서에서 공동예배의 개념을 끌어왔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이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날마다 조과, 만과와 석후 소과에서 “찬양되시는 주여, 주의 계명으로 나를 가르치소서.”(시편 119,12)를 반복합니다. 같은 구절이 주일 조과에서 불리는 주님의 부활 에블로기타리아에서 그리고 토요일의 추도식 에블로기타리아에서 성가로 불립니다.

특히 날마다 조과의 말미에 읽히는 대영광송에서 세 번 주님의 '뜻'에 대한 간구를 반복합니다. 즉 “영화로우신 주여, 나에게 주님의 의로운 뜻을 가르쳐 주소서. 영화로우신 주여, 나를 주님의 의로운 길로 갈 수 있게 인도해 주소서. 영화로우시고 거룩하신 이여, 나에게 주님의 의로운 빛을 비추어 주소서.”라고 합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뜻”을 그렇게도 강조해 말하면서, 첫째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가르쳐 달라고 하고, 둘째로는 하느님의 뜻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조화시켜 달라고 하고, 셋째로는 하느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밝게 불 밝혀 주셔서 지혜롭게 되게 해 달라고 날마다 하느님께 간구할 때,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지식과 존중은 우리를 위해 아주 중요한 그 무엇이라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단어 '뜻(권리 δικαιώματα)'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투쟁이라는 단어를 연상케 할 수 있습니다. 이 '뜻'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인간의 권리(뜻)', 즉 '노동계급의 권리(뜻)'라든지 '피를 흘리는 저항도 감수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추구하는 다른 계급 사람들의 권리(뜻)'를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공동체적 이익을 빼앗기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이익은 법적으로는 빼앗길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권리(뜻)는 하느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살펴보자면,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는 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는 아무리 사소한 것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서 그분의 뜻(권리)을 주장하시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분은 전체가 사랑이시므로, 사람한테 대가를 바라시지 않고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십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하느님에게는 어떤 이익도 없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서에서 '하느님의 뜻(δικαίωμα του Θεού)'이라는 용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1장 32절에서 “하느님의 법”이라 함은 하느님께서 율법의 형식으로(로마 2,26 참조) 옳은 것을 규정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6절에서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결정을 의미합니다. 이 결정에 의해서 인간은 정당성을 부여받게 됩니다. 시편 119편 33절에는 “주여, 당신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을 가르치소서.”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기서 '뜻'은 하느님의 계명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정의이자 진리인 하느님의 의지를 표현합니다.

지금 여기서 자세하게 다루지 않겠지만, 이 시편 119편을 근거로 그리고 성서의 다른 문구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권리)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한 하느님 의지의 표현이며, 하느님의 뜻(권리)은 하느님에 대한 틀림없는 증언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성서와 거룩한 전통을 통해서, 하느님의 결정과 계명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대체적으로 우리 사람은 '계명'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불쾌해지고 투덜거리게 됩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게 되면 우리 자신이 모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항하고, 동시에 명령을 위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명령을 지키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명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려는 것만이 목적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거나 또는 위반한다고 해도,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리 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무욕'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위반하게 되면, 우리는 해를 입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예를 들어, 전자제품을 옳게 사용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제조 업체가 우리에게 주는 상품 사용 설명서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설명서 내용을 잘 살펴보지 않는다면, 제품을 파괴하거나 제품을 잘 다루지 못해서 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승용차를 사면, 사용 설명서도 함께 받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기름을 넣어야 차가 움직이는지 쓰여 있습니다. 만약 자동차 엔진이 디젤 엔진이라고 되어 있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휘발유를 넣는다면, 승용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불이 나서 차가 탈 수 있고, 그 안에 타고 있는 우리 역시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정신과 몸을 갖춘 인간 존재를 만드신 그 설명서를 무시하는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인생 최종 목적에 성공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닿기 위해 정확하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됩니다.

 

우리가 기본적인 설명서인 '하느님의 뜻(δικαιώματα)-계명'에 의거해서 살아가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들 앞에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우리들을 정신없게 만들어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르게 만듭니다. 하느님과 멀어진 채로 혼자서 우리의 좁은 마음 씀씀이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지 맙시다.

 

형제자매 여러분, 날마다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전능하시고 자애로우신 주님이신 하느님께로 피합시다.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간구합시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우리가 문제를 옳게 판단하고 거기에 걸맞은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그리스도께서 승리의 화관을 우리에게 선사하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그곳에 잘 도착할 때까지, 우리 삶의 역정에 밝은 불을 밝혀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