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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관용 (2)

 

관용 (2)

소티리오스 대주교


지난 설교(관용 1)의 주제는 사랑으로 서로를 받아들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도 바울로께서 말씀하신,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주십시오."(골로사이 3:13)라고 하신 권고를 들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많은 의문이 생기고 심지어는 다른 의견이 생기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유 없이 우리를 모욕하고, 비방하고,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는 것이 맞습니까?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면 그 사람은 더 대담해져서 우리에게 부당한 행동을 계속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의문들 말입니다.

 

우리가 형제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형제의 어떤 잘못을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그 일은 모든 노력을 다할 만한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방에게 화내지 말고, 큰소리치지 않고, 위협하지 않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해를 끼친 그 사람에게 복수심을 품지 않은 채, 침착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려야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의 영혼에 이로움과 유익함이 있도록 하는 것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침 뱉고, 때리고, 못 박는 것을 모두 참으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마태오 18:15 참조).

그러나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나쁜 행동을 계속한다면,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하려는 사랑의 마음으로 더 참고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시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참으신 것처럼, 또 우리들의 불순종과, 우리가 그분께 하는 모욕과, 모든 종류의 죄를 용납하신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형제의 모욕을 받아들입시다. 결국, 이런 식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대개, 우리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는 가족, 친척, 친구, 동료들이니, 우리는 우리의 모든 노력을 다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관용과 사랑을 보시면서 몸소 직접 진리를 드러내 보이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께서는 박해를 받았고, 면직당했고, 유배를 당했습니다. 유배지에서 성인은 양적으로도 풍성하고 내용적으로도 훌륭한, 위대한 논문을 한 편 쓰셨습니다. 이 글에서 성인은 많은 예시를 들어가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자기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다. 만약 어느 누군가 하느님의 뜻을 어겨가면서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은 누구도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이것은 그 사람 편에는 의롭고 전능하고 선하신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보장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정의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잘못을 하고 그를 슬프게 한 사람들에게 그가 보인 인내와 관용에 대해서는 상을 주실 것입니다. 성인은 성서의 많은 예시 가운데에서 요셉의 경우를 언급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모욕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요셉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나쁜 마음을 갖기보다 오히려 선한 마음으로 인내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그에게 큰 보상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원하는 이집트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인께서 하느님을 신뢰하며 모든 박해를 견뎌냈기에, 하느님께서는 성인의 인내와 관용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셨고, 세상에서 그의 명예와 지위와 가치를 회복시키셨고, 성인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스의 에기나 출신으로 펜다폴리스의 대주교이셨던 넥타리오스 성인의 관용도 대단히 놀랍습니다. 성인께서는 사람들로부터 비방과 핍박을 받았지만, 결국 하느님께서는 성인의 결백을 드러내셨고 그가 위대한 성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혹시나 세상 사람들이 우리 행동에 대해 어떤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진 않을까, 혹은 우리를 향해 다른 사람들이 저지르는 나쁜 행동으로 인해서 우리가 피해를 입진 않을까, 염려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고 어기면서 살면, 그 해는 우리 자신에게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고 살면, 우리 자신에게 해가 미치지 않을 뿐만 아니고, 하느님께서도 신성한 방법으로 우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해를 입게 되는 사람들은, 형제들을 부당하게 대하고 비방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교회의 교부들은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은인으로 여겼습니다. 참 이상하게 들리시지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비난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우리에게 싸움을 걸면 걸수록, 우리에게는 겸손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 되고, 그들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도 되는 것이며, 또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듣는 사람 중에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에 대해서 화를 참기 어렵다면,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보이는 데엔 분명히 정신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즉, 그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기에, 우리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사람은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의사가 정신병 환자를 진료하는 중에 그 환자로부터 모욕을 당한다면 의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화를 내며 환자를 야단치겠습니까?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환자의 그런 행동이 그의 병으로 인해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모욕하고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대해야겠습니다. 상대방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정상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사고하며, 창조주의 뜻에 따라 자신의 뜻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자신의 욕망을 잘 조절한다면, 이처럼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자는 말씀입니다.

 

옛날에 한 수도사가 다른 형제 수도사와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가 화해하려 노력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 파이시오스 성인으로 잘 알려진, 당시 파이시오스 수도사에게 가서 이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파이시오스 수도사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형제 수도사에겐 아무런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저 당신의 방에 머물면서 기도매듭(꼼보스끼니)을 돌려가며 기도하시고,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여, 누구누구 (형제 수도사 이름)의 기도를 통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나 문제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문제를 단지 우리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하지 맙시다. 전능하시고 자애로우신 하느님이시자 평화의 왕이신 분께서 우리의 말을 들어주시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