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위를 닮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히브리서 13,8)
과거, 현재, 미래. 이러한 말로 시간이 나눠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란 얼마나 빨리 지나가 버립니까?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고 있습니다. 시간은 밤낮을 쉼 없이 흐르는 강과도 같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흘러가는 게 시간입니다. 시간은 물과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물속에 들어가 보면 물이 여러분의 몸을 스쳐가지만 매우 순간적입니다. 금방 여러분을 떠나갑니다. 또한 강을 바라보면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물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화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한순간은 다음 순간으로 이어집니다. 시간은 다음 시간으로, 주일은 다음 주일로, 한 달은 다음 달로, 일 년은 다음 해로 이어집니다. 세월과 더불어 갓난애는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십 대가 되고, 십 대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변합니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시간은 정해진 길을 갑니다. 이 길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오직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어제, 오늘, 내일! 어제는 지나가 버린 세월을 나타냅니다. 거슬러 멀리 가보면 아주 옛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아담과 하와입니다. 거기에서 시간이 정지해 버릴까요?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 이전에도 다른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즉 우주와 태양, 그리고 달과 무수한 별들의 창조가 그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언제 일어났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현대의 과학으로도 정확한 날짜를 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이 모든 것이 어제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역사는 과거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또한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신문, 라디오, TV 등 매체를 통하여 오늘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위하여 뉴스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지나간 어제들, 즉 과거에 대해선 흥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처럼 지금으로부터 백 년 혹은 이백 년 후에 살아갈 사람들은 오늘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들에 관하여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에는 몰두하지만, 역사책을 펴고 지나 간 세월 동안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지 읽어 보려는 사람들은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살기에 바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오늘날 영화나 TV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대부분 오늘, 현재에 관한 일입니다.
모두 어제를 잊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어제 돌아가신 부모를 잊고 있습니다. 그들은 묘지를 찾아 기도를 드리지도 않고 한 송이의 꽃도 바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죽은 자는 죽었을 뿐이며, 산 자는 살아 있을 뿐이다'라고, 이들은 오직 오늘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그들이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영적인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먹고 마시자, 내일은 없다"라는 식의 물질주의자로서 오직 오늘만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한 어제와 오늘, 즉 과거와 현재는 별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내일만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연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리에게 평화가 올 것인가 아니면 전쟁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혹시 불치의 병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또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불길한 일이 닥치지나 않을까? 등등, 사람들은 항상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미래라는 괴물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은 점쟁이에게 달려가고 의지하려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왜 지나가 버린 일들을 이야기하며 또 오늘과 내일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어제에도 존재하셨고, 오늘에도 계시며, 내일에도 여전히 계실 분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히브리서 13.8)라고 성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제에 살았던 수십억의 사람들 중에는, 즉 과거의 역사 속에서 영화를 누린 이도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잊히고 말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내일에는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의 무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면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날 것입니다. 그들 또한 수십 년을 살다가 죽고, 그들의 생애 또한 어제가 될 것입니다.
가을 숲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리 인간들을 보내고 데려가는 시간이라는 멈추지 않는 물결 가운데 우리들은 잠시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남아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거센 파도가 몰아쳐 와도 끝없는 세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도 같이 그분은 서 있습니다. 만물을 파괴하고 만사를 파멸시키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절대로 정복되지 않는 것으로 믿었던 시간도 그분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그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의 위대한 교부들이 믿었으며, 모든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알렸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내일 새로운 세대도 그리스도를 믿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세월을 초월하는 바위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바위 위에 그의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거센 파도가 밀려와도 마귀들이 그를 침범한다 해도,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언제나 안전합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