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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2월 26일] 성 뽀르피리오스 가자의 주교

Ὁ Ἅγιος Πορφύριος Ἐπίσκοπος Γάζης

성 뽀르피리오스 가자의 주교 (2월 26일)


귀족의 혈통

콘스탄티노스 대제 이후에도 때때로 공격적이기만 한 이교의 뿌리를 뽑는 한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적인 온유함을 불어넣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이런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성인께서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놀라운 모범을 보여주셨다. 성인께서는 347년 무렵 데살로니끼의 한 부유하고 귀족의 혈통을 지닌 집안에서 태어나셨다. 하느님에 대한 커다란 열망을 지니고 있던 성인은 집과 재산을 모두 남겨두고 이집트로 갔으며, 당시 이름난 스케티스(Scetis: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의 북서쪽 사막에 위치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세 수도생활 중심지 가운데 한 곳으로써 현재의 이름은 와디 엘 나트룬[Wadi 띠 Natrun]. 나머지 두 곳은 니트리아[Nitria]와 켈리아[Kellia]이다. ) 사막의 수도자 무리 속에서 5년 동안 생활하였다. 

 

기적적 치유

그 뒤 팔레스타인으로 간 성인은 요르단 사막의 한 동굴에서 5년을 더 생활하였다. 가혹한 기후로 말미암아 심각한 질병에 걸린 성인은 모든 희망을 하느님께 걸고 예루살렘으로 갔으며, 지팡이에 의지한 채 모든 성지를 참배(參拜)하였다. 그리고 미래에 자신의 전기작가가 될 마르코(Mark)를 만나, 자기 유산을 형제들에게 나누어주도록 데살로니끼로 보냈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마르코는 성인이 골고타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난 뒤 완전하게 병이 치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남은 재산마저 모두 예루살렘의 가난한 이들과 이집트의 수도원들에 기부한 성인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구두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정교(正敎)를 지키고 자선을 베풂

온유하고 자선을 잘 베풀며 성서를 해석하는 은총을 받은 성인의 소문은 그곳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45세가 되었을 때 본인이 원치 않음에도 사제로 서품 되어 예수님께서 달리셨던 진품(眞品) 나무 십자가를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가자(Gaza)의 주교가 돌아가실 때까지 3년 동안 이 임무를 감당한 성인은 다시금 자신의 뜻과 달리 주교직의 계승자로 선출되었다. 오래도록 가뭄으로 바짝 말라버린 도시를 위해 성인은 곧 300명이 채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금식을 명하고 철야기도를 하였다. 그 다음날 아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127명의 이교도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요한 흐리소스톰 성인과 친교하고, 펠라기오스(Pelagius) 이단에 맞섰으며,(415년, 디오폴리스[Diopolis] 공의회) 우상의 신전들을 헐고 성당을 세우는 한편 많은 자선을 베푼 성인은 420년 2월 26일에 평안히 안식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