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쁘로코피오스 증거자 (2월 27일)
이콘 반대 주의
성인은 데카폴리스(Decapolis: 소아시아의 산악지대인 이소리아의 데카폴리스 지역으로 그 중심 도시는 셀류시아이다.) 출신의 수도자로서 8-9세기초 성화공경을 박해하는 이들에 맞서서 정교의 바른 가르침을 수호하였다. 금욕적인 생활과 내적인 기도를 통해 육체적인 격정과 불결함을 철저히 정화한 뒤에 성인과 제자인 바실리오스는 성령의 힘으로써, 거룩한 이콘을 공경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하심을 부정하는 이단자들이 틀렸음을 입증하였다. 성인에 관한 한 전기에 따르면 성인은 먼저 고향의 한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복음의 가르침에 반(反)하는 그곳 수도자들의 잘못된 모습(물질에 대한 염려로 번거로운 삶을 사는 것)을 보며 4년을 인내하던 끝에 마침내 그곳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갔다.
끊임없는 기도
성인은 세상일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막에서 7년 동안 끊임없는 기도에 전념하였다. 그 뒤 많은 사람이 성인과 가까이에서 살기를 청하였고, 성인은 수도원을 세워 교부들의 가르침에 매우 충실한 생활을 이끌었다. 성인은 수많은 양 떼들을 돌보는 한편 본인 스스로도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살려고 힘썼으며, 또한 동시에 제자들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늘나라를 열렬히 기다리면서 영적으로 성장해 가도록 권고하였다. 그렇지만 성인께서는 고요한 생활(hesychia 헤시키아)을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후계자를 임명하고는 사막으로 물러나서 평화로이 살았다.
바른 가르침을 증거 하심
9세기초 아르메니아인 레오 황제(Leo V: 813-820)가 성화를 공경하는 것에 대해 박해를 시작하였다. 성인의 높은 덕과 금욕적인 투쟁, 교회 전통에 대한 충실성 등을 익히 알고 있던 황제는 성인을 감옥에 가둔 뒤 고위관리를 보내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때 성인은 모든 회유(懷柔)를 물리쳤으며, 거룩한 성화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다. 황제의 사신은 이를 황제에게 보고하였고, 성인은 고문을 당한 뒤 유배되었다가 유배지에서 안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