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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영성의 샘터

진심으로 용서합시다

 

진심으로 용서합시다


마태오 복음 18,23~35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종을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두 종은 바로 여러분과 나입니다.

만일 우리들 중의 누가 다른 사람이 잘못한 일을 트집 잡으며 그 대가를 치르라고 요구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관용이 거부당한 비유 속의 그 왕처럼 우리에게서 자비를 거두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전에 누리던 큰 자비 대신에 무서운 벌과 고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남을 비판하는 버릇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4세기의 수도자이시며 이집트의 위대한 사막 교부들 중의 한 분이신 마카리오스 성인은 남을 비판하는 일을 극도로 삼갔기 때문에 많은 이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분에 관한 기록을 보면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보호하시듯이 마카리오스 성인은 보고도 못 본 체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덮어 주었기 때문에 땅 위의 하느님이 되셨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사막의 교부 중에 한 분이신 에티오피아의 모세 성인은 어느 날 자신이 거주하는 ‘스키터’라는 지방의 수도원 원로들로부터 와 달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수도원 원로들은 죄를 지은 한 수도자를 심판해 달라고 성인을 불렀던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 성인은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씩이나 와 달라는 요청을 받자 모세 성인은 어깨 앞쪽에는 자그마한 모래주머니를, 어깨 뒤쪽으로는 구멍이 뚫려 모래가 줄줄 흐르고 있는 커다란 모래주머니를 멘 채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원로들이 “왜 모래주머니를 메고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성인은 “오늘 여러분들은 내 앞쪽에 매달린 이 자그마한 모래주머니만큼의 죄를 지은 사람을 심판해 달라고 나를 불렀지만 내가 지은 죄로 말할 것 같으면 모래가 줄줄 흐르는 이 등 뒤에 매달린 큰 모래주머니만큼이나 된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수도원의 원로들은 그만 양심의 가책에 사로잡혀 수도자를 심판하려 했던 자신들의 악한 의도를 회개했다 합니다.

 

정교회의 전통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으로 가르칩니다. 

설령 우리가 소위 남들이 말하는 “선한 행위들”을 많이 행했다 하더라도 남을 용서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결점을 가엾게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것이 됩니다.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은 진정 왕의 종이였으며 왕은 그의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빚을 탕감받은 그 종의 사악함을 알게 되었을 때 왕은 그를 마치 낯선 사람처럼 대하면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세례를 받고 고백 성사를 하고 성체 성혈을 모신다 해도 우리 이웃을 계속 미워하고 비판하면서 죗값을 치르라고 요구한다면 우리는 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이런 사악함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미움과 남을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고 겸손하게 남을 용서하고 그들을 가엾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과 비슷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살인을 한 적도 없으며 간음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므로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일들을 저지른 것과 다름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어리석은 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불타는 지옥에 가야 할 만큼 죄가 큰 인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도 이를 죄로 여기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일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고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일일이 열거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주의 기도에서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가 남의 죄를 용서해 주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를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라도 남을 판단하고 남에 대한 미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며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집과 자만심으로 인해 무서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봉독된 복음경에서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점을 확실하게 밝히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