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패트릭 아일랜드의 주교(3월 17일)
켈트인
유럽의 가장 서쪽 지역을 복음화한 성인은 383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가족은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이면서 로마화된 켈트인(Celts: 로마시대에 갈리아인이라고 불렸던 부족으로 고대에 독일지역에서 이주하였으며, 그 풍습과 언어는 오늘날 아일랜드, 웨일스, 프랑스 북서부의 브르타뉴 등에 흔적이 남아있다)이었다.
사제의 아들이었던 성인의 아버지 칼푸르니우스는 보제이면서 동시에 데쿠리오(Decurio :세금 걷는 일을 책임지는 지역 행정조직의 구성원)여서 부유하였고, 토지와 재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성인은 지역의 다른 많은 주민과 함께 해적에게 납치되어 아일랜드로 끌려가 그곳의 한 지주(地主)에게 팔렸으며, 그 주인은 그에게 산에서 가축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하였다.
회개와 준비
이교신앙에 물든 낯선 땅에서 혹독한 유배생활을 거치는 동안 성인의 마음은 하느님만을 향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참으로 하느님을 향해 돌아서는 회개의 삶을 시작하였다. 그는 추위로 얼어있거나 비로 흠뻑 젖은 땅에 무릎을 꿇은 채로 어떤 편안함도 바라지 않으면서 낮과 밤 거의 모든 시간을 기도하는 데 바쳤다. 이렇게 육 년이 지난 어느 날 밤 성인은 ‘너는 기도와 금식을 잘하였다. 하느님께서 너의 기도를 들으셨다. 이제 네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소리를 듣는다.
조국으로 되돌아온 성인은 그 뒤 아일랜드를 복음화하라는 부르심을 듣게 된다. 선교를 위해 철저히 무장할 필요를 느낀 성인은 골(Gaul: 라틴식 이름은 갈리아. 고대 켈트사람의 땅.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벨기에, 독일의 일부, 네덜란드 남부 등)로 가서 십오 년 동안 머물며 특별히 게르마노스 성인(7월 31일)의 가르침을 따라 배웠다.
‘성인들의 섬’
게르마노스 성인에 의해 주교로 서품 된 성인은 마침내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갔다. 성인은 그곳에 살고 있는 거친 전사(戰士)들에게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했으며, 조금씩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가운데 땅도 얻게 되자 그곳에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다.
성인은 지칠 줄 모르고 아일랜드 땅 전체를 여행하면서 복음을 선포하였고, 이런 가운데서도 어디에 머무르던지 날마다 드려야 할 그날의 기도를 결코 빠뜨리지 않았다.
성인은 삼십 년 동안 주교로 봉직하고 팔십 세가 되었을 때 물러나 자신의 ‘고백록’을 집필하였고, 461년 3월 17일 평화로이 안식하였다.
그의 노고로 아일랜드는 ‘성인들의 섬’이 되었으며, 200개 이상의 성당이 그의 이름으로 봉헌됨으로써 성인을 주요 수호성인으로 기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