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사바스 수도원에서 살해당한 수도사들(3월 20일)
약탈자들
8세기말(796년) 사라센인들(Saracens: 고대에는 아랍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중세에는 이슬람 신앙을 지닌 아랍인과 비아랍인 모두를 가리키는 호칭이었음)이 팔레스타인에서 베두인(Bedouin: 주로 사막에 살며 낙타나 양을 기르는 아랍계 유목민족) 부족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을 때, 그 두 세력은 한편으로는 무자비하게 그리스도교 마을과 도시들을 약탈하였다. 그들은 엘레프테로폴리스, 가자, 아스칼론 등 여러 마을들을 철저히 강탈하였으며, 이로써 농촌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거주지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피신하였고, 서둘러 방비를 강화함으로써 야만적인 침략자들의 공격을 물리칠 수가 있었다. 그러자 침략자들은 공격의 화살을 그 지역의 성 하리톤(St Chariton) 수도원, 성 사바스(St Sabas) 수도원 등으로 돌려 노략질하기에 이르렀다.
‘죽는 것도 이득이 됩니다’
몇 달 동안 계속되는 공격을 받으면서 수도자들은 밤낮으로 하느님께 기도하였고, 수도원을 버리고 떠나기보다는 모든 시련을(그리고 죽음마저도)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을 굳게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마태오 10,28)는 주님의 말씀을 믿으면서 속세를 버리고 떠난 자신들이 이까짓 인간적인 두려움 때문에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고 물으면서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다졌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필립비 1,21)라고 말하며 용기를 가졌다. 그런데 침략자들은 비잔틴 군대를 두려워하여 흩어졌던 약 60명을 모아 797년 3월 13일 다시 수도원으로 보냈다.
질식사한 수도자들
이때 몇몇 수도자들이 수도원 밖으로 나와 평화의 인사말을 건네면서, 그리스도인과 사라센인에 상관없이 그동안 수도원이 보여준 손님에 대한 환대와 지원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야만적인 무리들은 수도원의 황금을 자신들에게 넘기라는 말만 하였고, 수도원에는 충분한 양식과 의복조차 없다고 대답하자 곧 화살을 쏘아 30명 가까운 수도자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런 다음 수도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강탈하고는 불을 질렀다. 그리고 물러났다가 엿새 뒤 더 많은 무리가 쳐들어와 이번에는 수도자들을 지하통로에 가두고는 불을 질러 연기에 질식해 죽도록 하였다. 이때 20명의 수도자들이 죽고 많은 이들이 중상을 입었다. 그 뒤 하느님의 진노로 역병이 돌아 이 살육에 관계한 약탈자들 모두가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