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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이야기

고 소티리오스 대주교님 안식 2주기를 맞이하여

 

고 소티리오스 대주교님 안식 2주기를 맞이하여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적어 보는 존경하는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에 대한 추억


2024년 여름의 길목에 들어선 6월,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의 안식 2주년을 맞이합니다. 벌써 안식하신 지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2023년 6월 10일에는 안식 1주기를 기억하며 성찬예배와 추도식을 수도원에서 드렸습니다. 당시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님과 뉴질랜드의 미론 대주교님 그리고 지역 성당의 신부님들과 많은 신자들, 지인들이 참례하셨습니다. 수도원 주변에 사시는 이웃들도 추모하러 오셨습니다. 스위스에 사는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의 조카 엘레니 교우도 방한하여 추도식 준비를 돕고 꼴리바도 만들었습니다. 

영원히 기억될 우리의 영적 아버지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을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엮은 ‘안식 1주기’ 소책자는 이날 오신 이들에게 작은 답례로 나누어 드렸습니다. 소책자 내용에는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님 말씀,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님의 40일 추도식 인사 말씀, 고인의 이력, 저작물들, 유언, 1975년 11월 24일에 작성한 아테네 신자들에게 보내는 작별 서신 등으로 엮어졌습니다. 내용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추억이자 깊은 감동의 울림을 주었습니다.

 

2022년 6월 10일 새벽 4시 15분, 저는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께서 평화롭게 잠든 상태로 이 세상과 작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세상과 이별하는 고인의 마지막 얼굴은 순수한 아기가 해맑게 잠든 모습처럼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은 생전의 모습과 뭔가 달라 보였지만 섬뜩하거나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호스피스 담당 의사는 사람이 숨을 거두어도 한 시간 정도는 주변의 소리를 듣는다고 알려주었지요. 그래서 저는 부활절 성가를 계속 들려드리며, 고인의 안식처인 수도원으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인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대주교님, 다시 뵙겠습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고인의 모습은 병고에 시달리던 육신에서 이제는 은총의 날개를 달고 하늘로 귀향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을 모시고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원래 한강을 지나 가평의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고인과 자주 다니던 길이었습니다. 그때는 운전하던 제 옆에 앉아 계셨지만, 이날은 누워 계신 고인을 모시고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저와 고인의 마지막 여행길이었습니다. 대주교님께서 병상에서 제게 “걱정하지 마시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러 가는 길이었지만 슬프지도 않았고 걱정도 없었습니다.

 

대주교님이 안식하신 다음에도 많은 신자들이 수도원에 오셨습니다. 성당에서 예배를 참례하고 고인의 묘소 앞에서 인사하고 기도드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감동이 벅차올랐습니다. 신자들은 묘소 근처에 장미와 국화, 라일락 그리고 명자나무 등 여러 종류의 묘목을 심어주셨습니다. 대주교님께 존경을 표하고 사랑을 전하는 마음으로 심아진 꽃나무들이라서 더욱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안식 후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사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저는 대주교님께서 남겨 주신 수녀들에게 전하는 서신의 내용처럼 ‘우리의 영적 친교는 계속될 것’이라는 말씀대로 살고 있습니다. 대주교님이 기억날 때, 묘소 앞에서 고인을 불러 보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지난 3월에는 수도원에서 철야예배가 거행되었습니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님께서 고인을 회상하는 말씀을 해 주실 때, 참례자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생전에 좀 더 잘해 드렸으면 했던 아쉬움, 자주 찾아뵀어야 했던 후회감, 함께 했던 수많은 추억을 되새기면서 복받쳐 오는 감동의 눈물, 영적 아버지에게 순종하지 못했던 회개의 눈물, 진정으로 대주교님을 사랑했고 존경했고 감사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소티리오스 대주교님은 진정 이 땅에 굳건히 뿌리내린 큰 나무였습니다. 깊숙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크게 벌려 우리 모두를 감싸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생전에 그러셨던 것처럼 안식하신 지금도 아이들에게는 즐겁게 놀라고 자신의 등을 내어주시고, 어른들에게는 큰 나무로 그늘을 만들어 쉬어 가라 하시고, 타향살이하는 외국인들에게는 향수를 달래주시기 위해 그들의 고향 향기를 뿜어주십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마다 대주교님의 선한 모습 생각하면서 미소 짓게 합니다.

 

저는 대주교님이 중보 기도가 간절한 우리를 위해서 주님께 간구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수도원 묘소에 잠들어 계신 대주교님께 올해 2주기를 맞이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아가티 수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