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 품는 것과 남을 비난하는 것은?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오 6,14 ~15)
교회는 많은 사람으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이다.
서로 각기 다른 성격과 직업을 갖고 삶을 살아간다. 때로는 서로 간에 사소한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나아가 더 큰 분쟁으로 번져 교회가 어지럽게 되기도 한다. 초대교회 시절에도 그러한 예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고린토 교회를 들 수가 있다. 서로의 의견이 다름으로 인해 다툼이 생기고 나눠져 서로 비난하고 교회가 분열되는 위기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그때에 사도 바울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호소하였다 "여러분은 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말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굳게 단합하십시오.”(고린토 전 1,10) 의견을 통일시킨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것이다. 성서는 우리가 서로 남이 아니고 한 몸이라고 계속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 중에 가장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상처 나면 싸매 주고 보기 싫으면 덮어 준다고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바를 일러주고 있다.(고린토 전 12,22~26) 서로가 상대편을 이해하고 서로 감싸준다면 어떻게 서로 비난하고 원한을 품을 수 있겠는가?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각 신자들은 그 지체를 이루게 된다. 사랑이 많으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몸 된 교회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마태오 18,22) 실제로 사랑을 베푸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심지어는 십자가에 달리시면서까지도 그를 죽이려고 하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보시며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하며 기원하시던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되새기면서 우리 정교인들은 지금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친교를 나누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성서에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질 때까지 화를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에페소 4,26)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화를 낼 수 있지만 그 화냄이 하루가 지날 동안 계속될 때 그 사람은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은 남을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화냄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원한을 품게 되고 나아가서는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사사건건 비난하고 나서게 된다.
죄를 가슴에 품고 영성체성혈을 하면 오히려 주님을 모독하는 것이 되고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고린도 서 11,27~30)
죄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 절대로 평화가 없고 구원이 없다. 어떤 선한 일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예배에서 “서로 사랑합시다"하기 전에 죄진 마음을 먼저 깨끗이 해야 한다.
혹시,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하고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지, 미움이 극에 달하여 원한을 품고 있지는 않는지, 과연 우리 마음 가운데 그러한 점이 있다면 다시 형제를 이해하고 용서하여 사랑의 친교를 다시 나눌 수 있는 관용을 베풀 수는 없는지 스스로 판단을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