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희보 축일(3월 25일)
새로운 창조의 봄
밤의 어둠이 최고조에 달한 다음 낮의 빛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나기 시작하는 춘분에 이어지는 때에 우리 교회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하심과 어둠에 휩싸인 세상 속으로 ‘의의 태양’이신 분이 내려오심을 기념한다. 그분은 시간과 역사의 움직임을 정반대로 뒤바꾸시면서, 죽음을 향해 가는 하강(下降)을 변치 않는 영원의 봄날을 향한 상승(上昇)으로 돌려놓으셨다. 세계가 3월에 창조되었다는 고대의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세상의 봄날(창조 때)에 하와가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죽을 운명에 놓이게 된 것처럼, 동정녀(성모님)께서 순종하심으로써 3월에 인류가 해방된다는 것은 잘 어울리는 이야기이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
인간의 타락 이후 당신의 무한한 자비심으로 오래 참으신 하느님께서는 조금씩 세대에서 세대로, 기쁘고 슬픈 사건들을 통하여 ‘말씀의 육화(肉化)[Incarnation of the Word]’라는 위대한 신비의 실현을 인류에게 준비시키셨다. 그리고 이 신비의 완성은 깨끗한 영혼의 아름다움과 온갖 덕으로 말미암아 들어 올려짐으로써 전능하신 분의 주목을 받아 ‘말씀’의 신방(新房), 만물을 담으시는 분을 담는 그릇, 하늘 임금의 궁전이 되신 (하느님의) ‘어머니’가 계심으로써 가능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 가브리엘은 갈릴리 나자렛에 있는 동정녀 마리아 앞에 인간의 모습으로 갑작스레 나타나 ‘하와의 눈물에 위안을 가져다주시는 분’(성모기립찬양 제1스타시스)에게 인사하며 말하였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가 1,28)
하느님과 인간의 협력
이후 천사와 나눈 일련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攝理)를 확신한 성모님께서는 겸손히 자신의 모든 의지를 하느님의 계획에 맡기면서 말한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이 순간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가 이루어졌다. ‘하느님의 아들’이 (신성과 인성의) 두 가지 본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하느님이신 분이 인성을 취하셨고, 동정녀께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가 되셨으며, 이런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의 교환으로 말미암아 지옥에서 구조된 인간은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육화 하심의 신비는 하느님의 뜻과 성모님의 자발적인 동의(同意)가 낳은 협력(synergia, 시네르기아)의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