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코 아레투시온의 주교순교자(3월 29일)
열정적인 주교
성인은 4세기초 콘스탄티노스 황제가 다스리던 때에 아레투시온(지금은 에르-레스탄)이라는 시리아 도시의 주교가 되었다. 신성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성인은 우상숭배에 맞서 투쟁하였으며, 손수 이교의 신전을 부수고 그곳에 그리스도교의 성당을 세웠다. 제1차 세계공의회(325년, 니케아)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성인 또한 반(半) 아리오스적인(semi-Arian) 주교들 무리에 끌렸었는데,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Word)이신 분(곧,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본질이 같으신’(homoousios, 오모우시오스)이라는 용어를 신앙의 신조에 넣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정교 신앙
그러나 몇 차례의 지역 공의회들(343년 사르디카, 351년 시르미움)과 교회일치를 위한 화해노력(359년)을 거치면서 성인은 자신의 잘못을 재빨리 깨달았으며, 배교자 율리아노스(로마제국의 황제: 331/332-363 생존, 355-363 통치)가 권력을 잡고 나서 이교신앙을 부활시키기 바로 전에 분명하게 다시금 정교 신앙으로 되돌아왔다. 이에 우상숭배자들은 황제의 지원을 받아 성인을 붙잡아서는 옷을 벗긴 다음 다짜고짜로 치고 때리면서 고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나서 악취가 나는 하수구에 던져 버렸으며, 이어서 또 다른 이들이 성인을 날카로운 꼬챙이등으로 찔렀다.
고문을 이겨내심
그런 다음 성인의 몸에 소금물과 꿀 등을 바르고는 묶어서 큰 통속에 넣어 뜨거운 태양 아래 드러내 놓음으로써 말벌, 꿀벌 등에게 쏘이게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고문에도 불구하고 성인은 신앙에 대해 조금도 타협함이 없이 버텼으며, 이교의 신전을 다시 세우라는 우상숭배자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도리어 성인은 그들의 저열한 정신상태와 이 세상의 일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있는 점등을 비판하였다. 이런 성인의 말에 찔린 우상숭배자들은 성인을 풀어주었으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성인의 인내와 말에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성인은 364년에 평화로이 안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