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짧은 기도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기도 중에서 가장 짧은 기도는 무엇일까요?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몇 번이나 반복할까요? ‘아주 많이’ 반복합니다. 왜 그럴까요? 뜨리오디온 첫째 주일에 들었던 ‘세리와 바리사이파 사람’ 비유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첫째는 교만을 정죄하시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기도할 때 겸손해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덕목으로서, 다른 모든 미덕이 놓이는 토대가 됩니다.
신학자 그레고리오스 성인에 따르면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자신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기 인식, 즉 우리 자신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겸손한 평가만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세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우리가 언젠가는 죽게 될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마치 지상에서 영원히 살 것 마냥 물질적 재화만을 축적하는 데 평생을 바치지 않을 것입니다.
- 우리가 가진 목숨, 건강, 아름다움, 지성, 부, 기타 다른 재능과 능력들이 모두 하느님이 주신 선물임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이것이 마치 우리 스스로의 성과인 듯 자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다른 이의 실수나 죄에 대해 비난하고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겸손은 굴욕도 아니고, 속으로는 교만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는 위선도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세리의 겸손입니다. 비유 말씀을 보면 세리는 기도할 때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다음의 말을 반복할 뿐입니다. “하느님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겸손한 이의 기도는 간결하고, 하느님의 자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이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고 자신을 정죄하며, 하느님께서 자신의 덕에 대해 상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성찬예배와 모든 예식에서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는 겸손한 자의 기도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바로 이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주님이시고 우리는 종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시고 우리는 약합니다. 그분은 홀로 거룩한 분이시고 우리는 죄인입니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오직 그분의 무한한 자비에 의해서만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뜨리오디온과 대사순절은 영적 투쟁의 기간입니다. 이 투쟁에서 필요한 첫 번째 무기는 겸손입니다. 반면 가장 큰 장애물은 교만입니다. 그러니, 투쟁을 해나가길 원하는 이들은 겸손을 무기로 삼아 열심히 노력하여, 하느님의 풍성한 자비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